쇠고랑 찬 딸, 슬퍼할 틈도 없다…좁혀오는 검찰 수사망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아픈 손가락이다. 신 이사장이 태어나기 전 일본으로 떠나 성장 과정에서 옆에 있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장녀가 얼마 전 쇠고랑을 찼다. 신 총괄회장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은 딸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신격호·신동빈 부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점점 좁혀오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부산여고와 이화여대를 나와 1973년 선학알미늄을 통해 사업에 발을 들였다. 신 이사장은 그해 초까지 선학알미늄 이사로 재직하다가 같은해 5월 롯데호텔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1979년 신 이사장은 회사를 롯데쇼핑으로 옮겼고 패션과 의류 사업에 폭넓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신 이사장은 1979년 롯데백화점 설립에 참여했다. 이후 백화점을 알짜 계열사로 키워냈다. 롯데백화점은 신 이사장의 지휘 아래 1990년대 사세를 확장하며 국내 1위 백화점으로 도약했다. 신 이사장은 면세사업에도 손을 뻗어 롯데면세점이 국내 최고의 면세점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을 닦았다.

현재 신 이사장은 호텔롯데, 부산롯데호텔, 롯데자이언츠, 롯데쇼핑 등 계열사 4곳의 사내이사와 대홍기획, 롯데건설, 롯데리아 등 3사 기타 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지휘봉을 잡으면서 신 이사장은 뒤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 내 백화점과 면세점 등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초의 구속 불명예

이런 신 이사장의 입지를 흔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 신 이사장의 개인회사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가 계열사 영화관 롯데시네마 안에서 매점사업을 거의 독점 운영하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사례로 지탄을 받으면서 부터다. 롯데시네마는 결국 영화관 내 매점사업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두 회사의 매점 사업권을 회수, 돈 나올 구멍을 잃어버린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1월 청산절차에 돌입했다.

최근 불거진 면세점 입점 로비는 신 이사장의 몰락에 불을 지폈다. 신 이사장은 지난 26일 면세점과 백화점 입점 명목으로 뒷돈을 받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2007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롯데백화점 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총 35억3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신 이사장은 롯데백화점 요식업체 A사로부터 2007년 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총 14억7000만원을 수수했으며, A사는 이 대가로 전국 롯데백화점에 1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외에도 신 이사장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2013년부터 올해 5월까지 15억원을, 또 다른 화장품 업체 B사로부터는 2015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5억6000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신 이사장은 업체들로부터 뒷돈을 챙기는 통로로 아들 재영 씨 명의의 BNF통상을 이용했다. 또 BNF통상을 통해 2006년 1월부터 2011년 12월 딸 3명을 이사나 감사로 이름만 올려놓고 급여 명목으로 총 35억6000여만원을 지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의 구속이 신 총괄회장에게 상당한 충격을 가져다줬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신 이사장의 어린 시설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딸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은 딸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신 이사장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된 직후인 지난 8일 신 총괄회장과 그의 아들 신동빈 회장에게 출국 금지가 내려지는 등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어서다.

물론 신 총괄회장은 94세로 고령인데다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를 통해 의사결정능력을 판별 중인 점을 감안하면 불구속 기소될 가능성이 높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25~30일 일본 롯데·롯데아이스·롯데물산·롯데그린서비스·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투자회사 등의 등기이사직에서 퇴임하고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홀딩스 이사직만 유지하는 등 그룹에서 역할도 상당 부분 축소된 상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의혹들

문제는 신동빈 회장이다. 신 회장은 혐의가 입증될 경우 구속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초 신 회장의 자택과 집무실을 포함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벌이며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를 시작했다. 이후 롯데에 대한 의혹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신격호·신동빈 부자가 호텔롯데를 통해 3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은 해외 원료 수입 과정에서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 부과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소송사기로 세무당국으로부터 253억원을 부당환급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롯데그룹 광고계열사인 대홍기획 역시 비자금 조성 의혹의 중심에 서있다.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재승인 과정에서 미래부 간부를 상대로 금품을 건넸다는 주장도 나왔다.

롯데그룹 전반 경영활동은 전면 마비된 지 오래다. 호텔롯데 상장은 사실상 무산됐고, 롯데케미칼은 미국 석유화학 회사 엑시올 인수합병 계획을 철회했다. 해외 면제점과 호텔 인수는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롯데 잠실면세점은 재개장이 불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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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은 불과 30여일 만에 1조5000억원 이상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하반기 관세청의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 가능성도 낮아 추가적인 경영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왕자의 난’도 악재다. 신동빈 회장의 형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최근 일본어 사이트인 ‘롯데 경영정상화를 위한 모임’에 한국 롯데에 대한 검찰의 조사와 신동빈 회장 비리와 관련된 내용의 일본어 뉴스를 게재했다. 또한 신 전 부회장은 일본에 머물며 여론전을 진행 중이다. 지난 달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신동빈 회장에게 밀려 또 한번 고배를 마신 신 전 부회장은 9월 정기주총에서도 또 다시 신동빈 회장 해임안을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신 이사장의 진술 강도도 고심거리다. 일단 검찰은 신 이사장이 구속된 20여일 동안 추가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이사장이 혐의 일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이사장은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에서 눈물과 함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의혹 일체를 부정했으며 구속 수감 이후에는 “내가 왜 구속되느냐”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줄곧 혐의를 부인하거나 건강 등의 이유로 조사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 이사장이 그룹 비리에 대해 입을 열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 이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지만 백화점과 면세점 등의 사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만큼 그룹의 주요사항들은 전부 보고 받아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 이사장이 계속된 검찰 조사와 구치소 생활에 심신이 지치고 자신의 감형을 위해 입을 열게 된다면 오너일가로 향한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는 한층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빈의 남자들, 소환조사 시점은?

검찰 안팎에서는 신동빈 회장의 소환 시점이 이인원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등 신동빈 회장의 핵심 측근 인사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8월 초 이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본격적으로 위기대응에 나선 상태다. 롯데그룹은 자문 로펌인 김앤장, 태평양을 주축으로 광장, 세종 등으로 구성된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국내 로펌 시장을 주도하는 4대 로펌이 모두 롯데 사건 변호에 나선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망이 신동빈 회장을 향해 좁혀 들어오면서 신 회장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롯데그룹이 마련한 방패가 검찰의 칼을 막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홀로 남겨진 신영자

신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빈농 신진수·김필순 씨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5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신 총괄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1년 뒤인 1936년 면장을 지낸 큰아버지 신진설 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울산농업보습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학업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또래에 비해 덩치는 별로 크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으며 신중한 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습학교 졸업 후 그는 백두산 밑에 있는 ‘명천국립종양장’의 연구생으로 1년 동안 있었다.

18세가 되던 1940년 신 총괄회장은 같은 마을의 노순화 여사를 아내로 맞아 결혼하고 경남 양산에 있는 경남도립종축장의 기수보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직장 부근에서 혼자 하숙을 했다. 이때 그는 일본으로 밀항할 생각을 품었다. 이듬해 신 총괄회장은 돈도 벌고 못 다한 공부를 더하기 위해 단돈 83엔을 쥐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얼마 뒤 장녀인 신 이사장이 태어났다.

도쿄에 도착한 신 총괄회장은 와세다중학교 야간부를 거쳐 와세다공업고등학교(현 와세대대학 이학부) 야간부에 적을 두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1944년 전당포와 고물상 주인 일본인 하나미쓰 노인이 신 총괄회장을 눈여겨보면서 첫 사업기획가 찾아왔다. 신 총괄회장은 군수용 커팅오일 제조공장을 차려 사업에 착수했으나 공장이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며 주저앉아야 했다.

1946년 신 총괄회장은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포마드 등 유지제품을 생산·판매해 돈을 모았고, 추잉껌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롯데그룹의 효시다. 1947년 약제사 1명을 고용하고 수동식 기계를 설치, 2엔짜리 풍선껌을 제조·판매해 대박을 쳤고, 신 총괄회장은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은 당시 최고스타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광고모델로 사용하고 2엔짜리 껌에 1000만엔의 상금을 거는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탁월한 마케팅능력을 발휘, 롯데 껌으로 일본 껌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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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노순화 여사는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신 이사장과 노순화 여사를 보살폈다는 고향 지인의 말에 따르면 노순화 여사는 몸이 매우 약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집이 가난해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기가 어려웠다. 이 지인은 “당시 동네에서 부유한 축에 속했던 제 부친이 종종 그 집의 며느리(노순화 여사)를 태워 병원 통원을 시켰줬다”고 전했다.

오매불망 신 총괄회장을 기다리던 노순화 여사는 1951년 29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어린 시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신 이사장은 1967년 3월 대구 재벌이던 선학알미늄 2세인 장오식 씨와 결혼하고 13년 만인 1979년 11월 이혼의 슬픔을 겪어야 했다.

◆잔뜩 웅크린 롯데일가 자녀들

신 이사장은 장 씨와의 사이에서 장남 재영 씨, 장녀 혜선 씨, 차녀 선윤 씨, 3녀 정안 씨 등 1남3녀를 뒀다.

신 이사장은 재영 씨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BNF통상으로부터 자녀들의 급여 명목으로 40억원 이상 받아간 혐의를 받고 있다. 재영 씨는 전단지 제작과 부동산 관련 업체인 유니엘도 소유하고 있다. 유니엘은 한 때 ‘롯데가 일감 몰아주기’의 전형으로 지목됐던 업체다. 재영 씨는 지병으로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컨설팅이나 기업 경영 활동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은 두 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신 이사장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녀 혜선 씨는 2002년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팀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발을 들인 적이 있지만 현재는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녀 선윤 씨는 신 이사장의 자녀들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97년 롯데면세점을 통해 그룹 경영에 발을 들인 선윤 씨는 2002년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팀장, 2006년 롯데쇼핑 해외명품담당 이사, 2010년 블리스 대표이사, 2014년 10월 롯데호텔 마케팅부문 부문장을 거쳐 현재 롯데호텔 해외사업 개발담당 상무로 재직 중이다.

삼녀 정안 씨는 2004년 국제 변호사와 결혼 후 줄곧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의 딸들은 부동산 임대업이 주사업인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지분 45%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나머지 지분 55%를 소유하고 있다.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매출관계 등이 BNF통상과 얽혀 있어 검찰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수사선상에 오르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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