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대상은 직원 아닌 수장들부터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최근 우리나라 금융권의 최대 화두는 ‘성과연봉제’다. 실력에 따른 급여 책정으로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 하겠다는 취지다. 이 명분이 옳다면 금융권 성과연봉제에 따른 급여 삭감 대상은 직원들이 아닌 최고경영자(CEO)에게 먼저 겨눠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고액 연봉 CEO들의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올해 상반기 연봉 상위 10위에 오른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은 모두 회사로부터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대한민국 보통 직장인들이 평생을 꼬박 모아도 만져보기 힘든 돈을 6개월 만에 손에 쥔 셈이다.

정작 이들이 수장으로 있는 회사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안 그래도 금융권의 고액 연봉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높은 몸값에 담긴 의미는 점점 퇴색되는 분위기다.

◆연봉 1위,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은 올해 상반기에만 26억3600만원의 보수를 받으며 올해 상반기 금융권 연봉 1위에 등극했다.

급여가 2억3200만원, 상여금은 200만원에 불과했다. 권 사장의 올해 ‘연봉 대박’ 비결은 스톡옵션이었다. 지난해 상반기에 받은 스톡옵션 행사로 23억8200만원의 이익을 얻어 총 보수가 대폭 늘었다.

권 사장은 2009년 5월 스톡옵션으로 보통주 15만8944주를 부여받았다. 행사가격은 주당 5만2273원이었다. 지난 5월 28일 행사기간 마감으로 기준시가 6만7264원에 스톡옵션을 행사했다.

권 사장이 이끌고 있는 키움증권의 상반기 성적은 초라하다.

키움증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16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5.1% 감소했다. 불과 1년 새 영업이익의 4분의 1 이상이 날아간 셈이다. 당기순이익도 895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28.8% 줄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실적이 줄기는 했지만 주요 자회사의 견조한 실적으로 올해 2분기 연결 영업이익 475억원을 달성했다”며 “개인 투자자 매매 증가로 리테일 본부 영업수지는 늘었고 브렉시트 등 변동성 장세에서도 안정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PI본부가 호실적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연봉 2위,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은 올해 상반기 23억510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금융권 연봉 랭킹 2위를 차지했다.

기본급은 3억5000만원, 기타 근로소득은 100만원 수준이었지만, 20억원에 달하는 상여금을 받으며 연봉 상위권에 진입했다.

현대증권은 윤 사장의 ‘고액 보너스’에 대해 2014년 흑자전환에 이어 2015년에도 큰 폭의 흑자로 회사 매각 추진 과정에서 가치를 높인 공로를 인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순이익을 높였다기보다는 기업 가치를 높여 KB금융지주에 현대증권을 비싼 값으로 판 게 성과급 지급의 원천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회사의 실적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현대증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50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4.5% 급감했다. 1년 전에 비해 영업이익 규모가 4분의 1 수준까지 쪼그라든 것이다. 당기순이익도 359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79.0% 줄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위탁영업과 IB, 금융수익은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면서도 “트레이딩 부문에서 주가연계증권 평가방법 변경에 따른 손실과 유가증권 손상차손 회계처리가 반영되면서 순영업수익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연봉 3위,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올해 상반기 19억9400만원의 보수로 금융권 연봉 랭킹 3위에 안착했다.

유 사장 역시 고액 급여의 배경에는 상여금이 있었다. 유 사장의 기본급은 4억2400만원이었고, 여기에 더해진 상여금만 15억7000만원이었다.

유 사장은 2014년 실적으로 발생된 성과급 중 이연된 금액에 ▲2015년 금융시장 내 업권을 초월한 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4년 연속 금융투자업계 최고의 우수한 실적을 달성한 점 ▲정도 영업 문화 정착을 통해 회사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은 성과급을 받았다.

유 회장의 보너스에 대한 설명과 달리 한국투자증권의 올해 수익 규모는 1년 전과 비교해 ‘반 토막’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31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3.3%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1080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50.4% 줄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기업공개와 공모증자, 회사채 등 IB부문 수익은 고르게 우수한 실적을 내며 순이익이 증가했고, 자산관리 부문 역시 시장의 중위험, 중수익 수요 증가에 힘입어 양호한 실적을 냈다”면서도 “브렉시트와 하이일드 채권시장의 불안 등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와 시중자금의 부동화 현상 등으로 위탁매매, 운용 부문에서 순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최고 보수 CEO’ 권용원 사장, 회사는 부진
윤경은·유상호 사장, 수십억원 보너스 ‘머쓱’
연봉 랭킹 4~8위 CEO들, 성적 일제히 하락
한동우, 실적 선방 ‘안도’…정몽윤 ‘함박웃음’

◆4~8위, 강대석·원혁희·서태환·최희문·이어룡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올해 상반기 17억5300만원의 보수로 금융권 CEO연봉 4위를 마크했다.

회사의 성적은 역시 암울했다. 신한금융투자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60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9.5% 감소했다. 당기순이익도 506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59.7% 줄었다.

고(故) 원혁희 코리안리 회장은 올해 상반기 16억9056만원의 급여로 금융권 CEO연봉 5위에 자리했다. 다만 원 회장의 보수 중 대부분은 14억2700만원의 퇴직소득이었다. 원 회장은 지난 3월 2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코리안리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44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3.2%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1091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22.6% 줄었다.

올해 상반기 금융권 연봉 6위에 오른 CEO는 서태환 전 하이투자증권 사장으로 16억3700만원을 받았다. 서 전 사장 역시 이 기간 급여의 대부분인 15억3200만원이 퇴직금이었다. 서 사장은 하이투자증권에 입성한 지 8년 만인 지난 3월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이투자증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22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4.1%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91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61.6% 줄었다.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은 올해 상반기 13억13900만원의 보수로 금융권 고액 급여 순위 7위를 차지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성적 역시 1년 전에 비해서는 떨어졌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들이 올해 들어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1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업계 순이익 1위를 차지, 상황이 나쁘지 만은 않다는 평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77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2.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1334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15.8% 줄었다.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은 올해 상반기 12억80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최 사장의 뒤를 이었다. 다른 CEO들과 달리 기본급이 7억7400만원으로 상여금(4억3400만원)보다 많아 눈길을 끌었다.

올해 들어 대신증권의 수익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3분의 1 넘게 줄었다. 대신증권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60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35.7% 감소했다. 당기순이익도 439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42.0% 줄었다.

◆9~10위, 한동우·정몽윤만 ‘미소’

연봉 랭킹 9위에 자리한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다른 고액 연봉 CEO들에 비해 선방한 실적을 내며 한 숨을 돌렸다. 한 회장은 올해 상반기 12억5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신한금융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545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7% 감소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1조4881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12.3% 늘며 미소를 지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7년 연속으로 1조원이 넘는 상반기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며 “은행 부문의 안정적인 이익 증가와 더불어 비은행 부문의 실적 개선이 함께 이뤄지면서 성장세를 지속했고, 저금리·저성장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견고한 이익 흐름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은 금융권 연봉 10위 CEO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성적 상승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 회장은 올해 상반기 회사로부터 11억81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현대해상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286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1.5% 증가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070억원으로 같은기간 대비 23.3% 늘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자동차보험, 일반보험 등 대부분 종목에서 손해율이 낮아져 실적이 개선 흐름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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