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길러낸 인재들, 기업으로 ‘엑소더스’

▲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정부 핵심 인재들의 ‘기업 이직 러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10년 이상 국민들의 혈세로 키워진 인재들을 기업들이 빼가는 행태라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다. 일은 많아졌는데 승진의 문은 더 좁아진 고위 공무원들에게 기업들이 추파를 던지면서, 국민들을 위해 일해야 할 인재들을 빼가고 있는 셈이다. 정작 젊은 기업인들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 사회의 붕괴를 두고 우려가 쏟아진다.

최근 기획재정부 고위 인사들이 기업으로 이직하는 현상이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이미 2년 전부터 기재부에서는 국장급 인사들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공직사회를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여기에 기업들의 ‘러브콜’이 겹쳐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셈이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박준규 기재부 국제기구 과장(행시 41회)은 이번달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로 영입됐다.

박 과장은 국제통화기금(IMF)에 파견돼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는 등 국내·외 경험을 두루 거친 인재다. 2006년에는 미국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선발돼 MIT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은 실력 위주로 공개 선발하는 장학 프로그램이다.

박 과장은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주관하는 경력직 이코노미스트로 선발돼 글로벌 자본시장과 국부펀드 자문업무를 담당했다. 국제 감각을 익힌 그는 기재부 외신 대변인을 거쳐 올해부터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다.

미래가 보장된 길을 걸어왔지만 박 과장은 이직에 대해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로 생각했다는 뜻을 전전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사회의 안정된 삶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공직사회에서 늘 아쉬움으로 남았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기재부에서 활약하던 인재들이 기업으로 이탈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은다.

김이태 전 부이사관(행시 36회·국장)은 앞선 지난 4월 기재부를 떠나 삼성전자 IR그룹 상무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최 모 서기관(행시 43회)이 사모펀드(PEF)인 JKL파트너스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해 5월에는 동기 중 승진이 가장 빨랐던 박 모 서기관(행시 46회)이 퇴직하고 두산그룹 상무가 됐다.

기재부의 인사 이탈 문제가 대두된 것은 2014년부터였다. 이 해 이태성(행시 29회) 재정관리국장을 비롯해 5~6명이 지자체 경제부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2014년은 기재부 내부에서 상당한 인사적체로 신음하던 시기다. 당시 해외주재관들은 임기를 꽉 채우고도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실장급은 관피아(관료+마피아)에 묶여 산하기관장조차 쉽지 않다.

최근 문창용 세제실장은 관행처럼 이어진 관세청장 자리를 가지 못한 채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처럼 실·국장급 위치에서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자 실무를 담당하는 과장급이나 고참 서기관들은 벌써부터 이직 준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실제로 공직 경력 10년차 이상인 과장급들 이탈도 눈에 띄게 늘었다. 유기적인 인사와 승진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행시 40회 대 기수를 기점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모든 경제정책에 관여하는데다, 올해는 정책적 부침도 심해 업무과다를 호소하는 직원들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 사진=뉴시스

◆미래부에서도 대거 ‘이탈’

기재부와 함께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재들의 대거 이탈에도 걱정 어린 시선이 쏠린다.

기재부가 국가 경제의 컨트롤 타워라면 미래부는 IT강국 대한민국을 이끌 핵심 부서라는 점에서 우려는 증폭된다. 더욱이 해당 인재들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정부 출연 연구기관으로 빠지는 것을 두고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와 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미래부의 4급 이상 퇴직자 재취업자 수는 2013년 미래부가 생긴 이후 가장 많은 11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인 4명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지난 3년 간 퇴직자 수(2013년 1명·2014년 0명·2015년 4명)와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이를 두고 소속 공무원들의 잇따른 일탈행위로 뒤숭숭한 조직 내부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부 내부에서는 지난 6월 이후 자정결의대회와 청렴교육, 징계유형별 예방교육 등 잇따른 부패방지교육에 피로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늘고 있다. 지난 6월 명예퇴직신청에는 15여명이 몰려 5명 안팎만이 선발되는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다른 정부부처와 달리 다음 정권에서 조직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엑소더스’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재직 당시 업무와 유관성이 높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 등에 재취업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예산 지원을 두고 뒤에서 남모를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으로 떠난 기재부 인사들…2014년부터 계속
일은 많고 승진은 막히고…다가오는 기업의 ‘유혹’
미래부도 ‘뒤숭숭’…IT강국 이끌 인재들은 어디에?
젊은 직장인들은 공무원이 ‘꿈’…사회적비용 ‘우려’

문해주 전 미래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아태원자력협력협정 사무국장으로, 이병수 전 미래부 거대공공연구정책과 서기관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미래부에서 우주원자력협력과장과 거대공공연구협력과장을 지낸 홍승호 과장은 포스텍에서 계약직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박필환 전 미래부 과학기술전략본부 성과평가혁신관은 광주과학기술원 대외부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미래부 퇴직 공무원이 산하 출연연 기관으로 재취업하면 정부 예산 지원 등에 개입할 우려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업체와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퇴직 예정 고위공직자가 퇴직 전 5년간 취급한 업무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곳에는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부 산하 출연 연구기관은 대부분 취업제한대상기관이 아닌 공직유관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때문에 취업심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한 퇴직 공직자들의 취업에는 제한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출연 연구기관들은 연구·개발 자금 지원 등에서 정부에 유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미래부 퇴직자들의 입성을 반기는 측면도 있다는 전언이다.

▲ 사진=픽사베이

◆젊은 회사원들은 공직으로

정작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기업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공무원 이직을 준비하는 인원이 상당수다. 고위 공무원은 기업으로, 젊은 회사원들은 공직으로 떠나는 웃지 못 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 전체가 지나친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2011년부터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시험(공무원 경력직 채용 시험)을 시작했다. 이에 사기업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공무원 경력 채용에 응시하려는 ‘반수생’ 직장인들은 계속 늘고 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이 “우수한 민간 인재를 공직에 끌어들이기 위해 외부 인재 채용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고 언급한 것처럼 공무원 경력직 채용 규모는 꾸준히 확대돼 왔다.

이와 동시에 지원자 수도 같이 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공무원 경력 공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공무원 경력직 채용은 국내 시행 첫해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2011년 102명 모집에 3317명이 지원해 무려 32.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5급 시험만 있던 2014년까지 채용 인원은 100명을 조금 넘은 데 비해 지원자 수는 3000명을 웃돌았다.

지난해부터 7급 경력직 채용이 확대되면서 직장인들 가운데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들은 더욱 많아졌다. 지난해 5·7급을 합쳐 224명을 선발하는 데 총 5656명이 지원했다. 올해는 지원자 수가 6000명을 훌쩍 넘었다.

특히 7급 공채에는 대기업 직원과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대거 몰렸다. 지난해 합격자 절반 이상이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을 보유했을 만큼 고학력자가 몰렸다.

인사혁신처는 경력직 채용 시험에 대해 “천리안 위성 개발자와 벤처 기업가, 아랍 현지 건설 근무자, 디자인 전문가 등 공채로는 충원이 어려운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을 대거 뽑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안정된 일자리로서의 공무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현재 사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10명 중 8명은 공무원으로 직업을 전환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사기업 재직 직장인 1224명을 대상으로 ‘현재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으로 직업을 전환할 의향’을 조사한 결과, 무려 80.1%가 ‘있다’고 답했다.

공무원으로 직업을 전환하려는 이유로는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어서’(69.7%·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다음으로 ▲‘연금 등 노후보장이 돼서’(52.8%) ▲‘오래 일할 수 있어서’(42.5%) ▲‘출산 등 경력단절 이후를 대비해서’(17.0%) ▲‘현재 직업이 적성에 안 맞아서’(16.2%)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임민욱 사람인 팀장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일단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시간과 돈의 낭비로 이어질 확률이 크다”며 “공무원 중에서도 적성에 맞지 않아 사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본인의 적성은 물론 합격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따져본 후, 역량 강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일 것인지 공무원 시험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