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공공기관들…주식시장은 ‘공포’

▲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정치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대 이슈인 대통령 탄핵에 대한민국 금융시장이 떨고 있다. 과거 고(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주식시장의 ‘혼돈’을 기억하는 여의도 증권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어느 업계보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바깥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융권. 탄핵에 따른 저마다의 셈법에 분주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로 금융권이 ‘패닉’에 빠졌다. 임명권자가 사라지면서 당장 줄줄이 임기가 끝나는 금융 공공기관들 수장 자리는 대규모 공백이 점쳐진다. 탄핵 정국 속에서 국내 거대 금융기관들이 선장을 잃은 채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 금융위원장인 임 내정자가 새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 낙점 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청와대는 지난달 2일 임 위원장을 새 부총리로 낙점됐다. 그런데 대통령 거취 문제에 밀려 한 달이 넘도록 청문회 개최 여부조차 결정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지지부진했던 임 내정자의 인선은 끝내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이제 완전히 미궁 속으로 빠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파장

알 수 없는 임 내정자의 행보에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 공공기관장들의 인사까지 ‘올 스톱’ 되는 연쇄 작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공공기관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금융위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탄핵 정국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임명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융 공공기관장 임기가 가장 먼저 끝나는 곳은 기업은행이다. 권선주 행장의 임기는 당장 이번달 27일 종료된다.

또 김한철 기술보증기금 이사장도 내년 1월 임기가 끝난다. 기보는 20일까지 차기 이사장 공모 신청을 받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차기 수장들을 선임하기 위해 1차 후보를 추려 검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번 탄핵안 가결로 완전히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이에 탄핵안 가결 이후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면 금융 공공기관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선 3~4개월 전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끝나면 차기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인선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의 후임 자리도 공석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관피아(관료+마피아)’들이 공공기관장에 ‘무혈입성’할 수 있다는 걱정 어린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계감사국장으로 선임된 유재훈 전 사장의 퇴임으로 한 달 이상 공석이 된 차기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자리에 이병래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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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죽인 증권가

금융시장도 숨을 죽이고 있다. 과거 탄핵 가결 당시 요동치는 증권시장을 경험했던 증권사들은 10여년 만에 등장한 탄핵 이슈에 긴장감이 팽배하다.

2004년 3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가결 당시 금융시장은 큰 혼란을 겪었다. 탄핵안 통과에 따른 국정 혼란과 경제정책 추진 동력 상실 우려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심리가 확대된 까닭이었다.

탄핵 가결 당일인 2004년 3월 12일 주가는 2.43% 급락했다. 이날 유가증권 시장의 시가총액은 약 9조3000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1조3000억원이 사라졌다. 하루 만에 대략 10조6000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2004년 당시 코스피지수는 800선대에서 주로 움직였다. 2016년 현재 코스피지수는 1900선~2000선대에서 주로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탄핵으로 인한 시총 감소분을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2004년 10조6000억원이었던 금액은 2016년 26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또 당시 원/달러 환율은 하루 동안 11.8원 급등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권금리도 급등락을 반복했다. 출렁이던 금융시장은 대통령 탄핵안이 기각된 같은해 5월 14일 이후에야 불안심리가 잦아들면서 본궤도를 되찾았다.

박 대통령 탄핵 이슈도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투자업계는 당장 다음주 월요일 증시 개장을 앞두고 긴장감이 팽배하다.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주말 내내 정치권 소식에 촉각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특히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헌법재판소 심판, 조기 대선 정국 등 여러 변수가 상존해 있어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헌재의 심판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점에서 탄핵 이슈라는 불확실성이 증시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아 크고 작은 이슈마다 출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어찌 됐든 결론이 나면서 불안정한 증시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은 브라질도 상원의 탄핵의견서 및 탄핵보고서 채택 등으로 불확실성이 제거된 시점에서 증시는 상승 흐름을 보였다”며 “국내 증시도 탄핵 가결 시 적어도 국정 혼란이 장기화할 거라는 불확실성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탄핵 부결’이 오히려 증권가에는 더욱 악재일 수 있는데 이를 피해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았으면 정국 혼란이 더욱 가중되면서 기업들의 투자 결정이 미뤄지고 외국인들이 이탈할 소지가 다분한 탓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탄핵안이 부결됐다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위험자산에 대한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며 “정부 불신이 기업에 대한 투자마저도 위축시킬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탄핵 부결 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정국 혼란에 따른 불안에 한국 증시에 등을 돌릴 수 있었다”며 “부결 때의 후폭풍이 오히려 예측 불허였다”고 말했다.

▲ 사진=뉴시스

◆금융 당국 비상

불안한 국외 환경도 탄핵에 흔들리는 한국 금융시장의 위기를 더욱 키울 것이란 전망이다. 사실상 ‘식물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서 내우외환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오는 13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미국 금리 인상 단행으로 저금리 기조에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신흥국에 유입됐던 선진국 자금이 급격히 유출돼 외환·금융시장에 충격을 가져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안 그래도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에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급속히 약화된 상태다. 금리 인상 이외에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의 경제정책 불확실성, 이텍시트(Itexit·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 등 대내외 리스크가 산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 더해지면서 불안 심리가 급속히 확산돼 시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 이에 금융 당국은 탄핵안 표결 이전부터 ‘예령’을 걸어두고 비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금융 당국은 지난 7일 정은보 부위원장 주재로 금리상승 대응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금리동향을 점검하고 비상계획을 포함한 선제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도 탄핵에 따른 불안 심리를 잠재우고 시장 변동성에 조기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변수가 워낙 많아 탄핵 표결 이후의 금융시장 흐름은 뚜껑이 열려봐야 안다”며 “현재로선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다독이고 변동성이 커질 경우에 대비해 선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합동으로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정국 이슈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금융시장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심리가 확산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다각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촉각’…새 수장 찾기 분주
탄핵 정국 여파 관치금융 낙하산인사 비관적


은행권도 정치권의 흐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은행장들의 임기가 줄줄이 만료되며 새 인물 찾기에 분주하다.

공공성을 띄는 은행들의 특성 상, 민간은행장들의 인사에도 정치권의 입김이 꾸준히 작용해온 탓에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눈치보기에 바쁜 모습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초 국내 주요 은행 최고경영자들의 임기가 줄줄이 종료된다. 은행권에도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이번달 30일이었던 이광구 우리은행장 임기는 신규 과점주주들이 지배구조를 정비하기 위해 일단 내년 3월로 연장됐다. 새로 지분을 인수한 일부 과점주주 사이에서 시일이 촉박하고 그간 실적 개선 등의 공로가 있어 이 행장의 연임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3월에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은행장의 임기가 끝난다.

함 행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노조 통합 등 ‘화학적 결합’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연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돌발 변수가 많아 예단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조 행장과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이 2파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4월에는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그간 신충식 NH농협금융지주 초대 회장을 제외하고 관료 출신이 회장직을 맡아왔다. 차기 회장 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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