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심판 ‘준엄하고 엄중했다’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완재 기자] 수백만 촛불민심이 국민을 버린 대통령에 대해 ‘탄핵(彈劾)’으로 화답했다. 2016년 12월 9일 금요일, 대한민국 국회는 제18대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과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규정, 그 책임을 묻고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대한민국 헌정 이래 역대 2번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자 국민의 엄중한 심판으로 기록되게 됐다. 박 대통령은 당장 이날부터 직무정지 상태에 돌입하고 식물 대통령이라는 오명과 함께 정치적 유폐에 들어갔다. 국민의 분노가 광장에서 촛불로 불탔고, 끝내 아집의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형국이다.

국민 뜻 받든 국회, 찬성 234표 ‘압도적 가결’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9일 234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3시 본회의를 열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에 부쳤다. 표결에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했으며, 총 234명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기권은 2표, 무효는 7표였다. 야당은 박 대통령에 이어 황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 바통을 이어 받는다.

한편 권한이 정지된 박 대통령은 향후 관저에 머물며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릴 예정이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대통령’이 된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은 불명예 퇴진하는 건 물론이고 대통령으로서의 불소추 특권도 상실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특검이 진행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구속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비선실세 최 측근이었던 최순실씨 일가와 공조한 각종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탄핵이라는 국민적 단죄에 직면하게 됐다. 비로써 재임 중 발생한 ‘세월호 사태’라는 대 참사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유기 등 국정난맥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됐다.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한 달여 넘게 광장에 집결한 수백만, 수천만 ‘촛불민심’은 뜨거웠고 혁명이나 다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따라 당장 국정은 대혼란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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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직무정지 ‘식물정부’ 돌입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가결된 가운데, 탄핵안 가결시 이날 오후 6시부터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 조치가 이뤄진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체없이 이를 결재하고 정 의장이 결재한 탄핵소추의결서 정본은 국회법 제134조에 따라 권성동 법사위원장에게 송달된다. 국회는 의결서 등본을 헌법재판소 심판민원과에 송달하고, 권 위원장은 정본을 헌재에 접수한다. 이때부터 헌재는 최대 180일 동안 탄핵 결정을 위한 심리에 착수한다.

국회는 또 등본을 청와대에도 전달, 동시에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된다.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가 박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한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지위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헌정사상 두 번째로 탄핵으로 직무정지를 맞게 되는 것인데 최장 6개월이 걸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유폐’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직무정지시 박 대통령은 헌법상 보장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와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를 모두 일시적으로 상실한다.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 ▲국가와 헌법의 수호자로서의 지위 ▲국정의 통합·조정자로서의 지위 ▲다른 헌법기관 구성자로서의 지위 등이다.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는 ▲행정의 최고지휘권자·최고책임자로서의 지위 ▲행정부 조직권자로서의 지위 ▲국무회의의 의장으로서의 지위다.

탄핵 가결시에는 이같은 지위가 권한대행에게 넘어간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공무원임면권, 국군통수권, 긴급처분·명령권, 계엄선포권, 국민투표부의권, 국회출석발언권, 법률안 제출권 및 거부권, 위헌정당해산제소권, 사면·감형·복권권, 대통령령제정권, 조약 체결·비준권, 외교사절 신임·접수·파견권 등의 권한을 모두 잃게 된다.

이는 박 대통령이 더 이상 공무원을 임명하거나 국무회의를 열어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의 외교활동도 정지됨은 물론, 군 통수권자로서의 지위도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헌재의 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통령이라는 직 자체를 잃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탄핵안 가결시에는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박 대통령은 관저에서 헌재 판결을 기다리며 길게는 6개월까지 유폐 상태에 들어가게 될 전망이다.

수백만 촛불민심 ‘촛불혁명’ 승리
헌정사상 두 번째…‘대격랑’ 예고
與野 잠룡 대권행 시계 셈법 분주
與 분당 기정사실화...親朴 ‘폐족’

◆이제부터 직무대행 황교안 대행 체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의결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운영을 책임진다. 국정운영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국무조정실로 바뀌게 된다.

황 총리는 군 통수권을 비롯해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에 대한 모든 권한을 이양받게 된다. 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군통수권 ▲조약체결 비준권 ▲헌법개정안 발의·공포권 ▲국민투표 부의권 ▲헌법기관 임명권 ▲행정입법권 등의 권한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황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행정부의 수반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처럼 17부·5처·16청의 행정각부를 지휘한다. 국무조정실이 행정부의 콘트롤 타워로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한다.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지휘·감독 업무도 수행한다.

대통령 직속 기구들도 당분간 국무조정실 산하로 귀속될 예정이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실·국가정보원·감사원·방송통신위원회·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이 있다.

대통령비서실은 헌재에서 탄핵 심리를 마칠 때까지 임시대통령 격인 황 권한대행의 보좌체계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국방·치안 등의 영역을 책임지기 위해선 보다 체계화 된 청와대 참모들의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다만 황 총리가 권한대행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던 시민들이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친박 몰락 등 여야 정치권 지각변동 예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결정으로 새누리당과 현 정권의 기반이자 대주주였던 친박계 의원들의 몰락이 예상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폐족(廢族)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정현, 서청원, 홍문종, 홍문표, 박상현 의원 등 대거 친박계 인사들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관측된다. 또 향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번 탄핵이라는 멍에를 지고 당선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라도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면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 이번 탄핵정국에 탄핵 쪽으로 배를 갈아타고 국민적 민의를 받는 비박계 의원들은 향후 정치적 입지에 일종의 사면권을 받아든 상황이다. 남경필, 정병국, 나경원, 김영우 의원 등이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당장 차기 대통령 후보군에서도 야당에 맞설 강력한 후보찾기에 난항이 예상된다. 여당 쪽 입당 및 후보 출마가 유력했던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새누리당 합류도 사실상 요원해진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내년 1월 귀국 후 새로운 정치세력과의 세 규합을 통한 세력화를 꾀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야당 내 상황도 다소 역동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줄곧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향후 행보에도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국민의당의 안철수 전 대표가 최근 주춤한 지지율을 어떻게 만회하느냐가 야권 내 잠룡군의 새 판도를 만드는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야권 후보들의 군웅할거 판도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1997년 대선 이후 지속적으로 대선판의 최대 변수였던 후보 단일화는 이번에도 야권 대선판의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탄핵 공조’를 ‘대선 공조’로까지 이어갈 경우 차기 대선은 ‘박근혜정부 및 새누리당 심판론’ 이라는 프레임 속에 치러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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