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정치리스크 동시에 경제리스크

▲ 재벌 총수들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한국 경제 앞날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빨간불이 켜졌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재계 경영시계는 완전히 멈춰섰다. 트럼프 리스크, 미국 금리 인상, 대내외 국가 신뢰도 하락, 반기업정서 확산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산더미다. 이후 있을 특검도 골칫거리다.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한국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을 낮췄거나 낮출 것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도 한국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정치불안을 꼽았다. 무디스는 최근 한국과 대만의 신용등급을 비교한 보고서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가 국내 경제정책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멈춰선 대한민국

이에 앞서 OECD는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6월에 예측했던 3%보다 0.4%포인트 낮은 2.6%로 제시했다. 반면 OECD는 올해 세계 경제가 2.9%, 내년에는 이보다 0.4%포인트 높은 3.3% 성장하는 등 경제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년 4월 세계경제전망과 함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 제시할 예정인 IMF는 한국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코시 마타이 IMG 아시아‧태평양담당 부국장은 최근 미국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아직 4분기 지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3분기 경제지표를 보면 아마도 우리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낮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물론 국책 및 민간연구원 등 국내 기관도 우리나라의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대부분 2%대로 낮췄다.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 금융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2.2~2.6%로 예상했으며 내년에는 해당 수치를 더욱 낮출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 앞둔 총수들 “나 지금 떨고 있니?”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일제히 하락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일 내년도 대한민국 경제가 2.4% 성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5월 예상치 2.7%에서 0.3%포인트 내려간 것이다. KDI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 내년 성장률이 2.0~2.3%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성장률 0.1~0.4%포인트 하락은 추가경정예산을 최대 10조원 가까이 편성해야 회복이 가능하다.

여기에 12월 미국의 금리 인상과 내년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 등도 악재다.

재닛 옐런 미국 연준 의장은 지난달 17일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기준 금리 인상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이뤄질 수 있으며, 금리 인상의 근거가 강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옐런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이달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분명한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은 국내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경기 둔화와 신흥국의 경기 위축을 불러오게 돼 국내 기업들의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제품, 자동차, 자동차부품 등 신흥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시중금리의 상승으로 대출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고, 수출입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의 변동에 따른 충격을 고스란히 입게 된다.

내년 취임을 앞둔 트럼프가 내놓을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6대 무역국인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주게 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7일 ‘우리나라 대(對)중국 수출의 최종 귀착지 분해 및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수출이 전자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국가 간 산업의 거래내역을 정리한 ‘2014년 세계산업연관표’를 토대로 중국의 대비수출이 10% 감소할 경우 우리나라 총수출은 0.36%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4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보고서는 “중국의 대(對)미국 수출 부진이 중국의 경기 악화로 전이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확대될 수 있으므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수출지역 및 품목 다변화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호무역 확산, 한국 강타

같은날 건설산업연구원은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 공약이 국내 건설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국내 무역 감소로 이어져 국내 경제성장률과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국내 건설 및 부동산 시장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할 경우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특성상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 사회가 직면한 인구 감소와 노령화, 부동산 공급 증가 등과 맞물리면 부동산 시장 수요가 급속히 위축되고 건설경기 하락폭이 확대될 수 잇다고 전망했다.

또한 동남아와 남미 국가 등 경제에 타격을 줄 경우 당분간 국내 건설사의 신흥국 해외건설 수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 경제가 탄핵 정국으로 충격에 빠진 것은 지난 2004년 3월 12일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지 12년 만이다.

당시 재계는 앞으로 닥칠 국정 혼란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경영계획 재점검 등 비상대책을 강구하고 나선 바 있다.

연말 인사‧지배구조 개편 ‘올스톱’
특검‧조기대선까지…불안감 가중

삼성그룹은 “이번 혼란이 조기 수습돼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업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LG그룹은 “대외 신인도 악화 등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국민적 지혜를 모으고 정치‧사회적 안정을 찾아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이번 사태가 경영활동과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한진그룹은 “기업들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혼란스런 정국을 조속히 수습하고 정치인과 기업,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난국을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작금의 정국은 정반대 양상이다. 국내 재계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 사진=뉴시스

특히 탄핵소추안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들에 대한 뇌물죄 혐의가 담기고 삼성과 SK, 롯데 등 구체적 기업 사례도 적시됨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특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르재단에는 삼성, 현대차, SK, LG 등 16개 주요 그룹이 486억원, K스포츠재단에는 19개 그룹이 288억원을 단기간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총수들은 청문회에서 “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대가성이 없다”는 점을 입을 모아 강조했지만, 특검 수사 과정에서 뇌물죄 적용 쪽으로 결정이 나면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대사건을 마주한 재계는 경제 불투명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삼성그룹은 매년 12월 초 열어왔던 사장단 인사와 정기임사, 글로벌 전략회의, CEO 세미나 등에 차질을 빚고 있다. 새로 구성된 사장단의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가스에서 열리는 CES(소비자가전제품박람회) 참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내년 대선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잔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재벌총수 청문회 당시 언급한 전경련 탈퇴와 미래전략실 해체 문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갈길 먼 재계

현대차그룹은 지난 5일 열기로 했던 경영전략회의를 잠정 연기한 상태다. 경영전략회의는 주로 정몽구 회장이 직접 주재, 본부장급 이상 임원이 참석하며 영업현황 등 회사의 주요 사안에 대해 보고하고 미래 사업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로 매월 초 열린다.

현대차그룹은 매년 12월 중순께 치러진 하반기 해외법인장 회의 이후 연말 정기인사 시기를 가늠해왔지만, 올해는 회의 일정 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SK그룹과 롯데그룹도 연말에 진행해 왔던 정기임원인사를 내년 초로 미룬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 탄핵과 특검, 조기대선 국면까지 경제가 정치에 잡아 먹힌 상황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각 기업은 내수경기 위축 및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면밀한 대응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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