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사드배치 한중 외교갈등 비화조짐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연예계로부터 촉발된 한한령(한류금지령)의 해일은 국내 문화업계는 물론 산업계도 덮치려 하고 있다. 지난해 사드배치를 결정한 이후부터 한‧중 간 외교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했는데, 14억 거대 중국이 꺼내든 칼은 돈줄 조이기였다.

중국인 관광객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동시에 줄어들고 있다. 중국인들의 한류 관심은 상승하는 반면 중국 당국이 전세기 운항까지 막아가며 한국으로 가는 관광객을 막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 최대 명절 춘절을 앞두고 있어 유통가에는 한한령의 공포가 더욱 커지고 있다. 30억이 오가는 중국 최대명절인 춘절을 앞두고 한한령의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관련 업계가 돌파구를 마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한령 여파…연예계부터 홈쇼핑까지

한한령 조짐의 출발은 연예계였다. 연예계를 시작으로 한한령의 여파는 중국의 연예 기획‧제작 등에 투자한 국내 기업과 한국을 방문하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미치고 있다.

싸이와 황치열 등은 활발히 활동하던 중국 예능프로그램에서 모자이크 처리되거나 통편집 됐다. 중국의 한 휴대폰 광고회사는 배우 송중기를 모델로 사용하다가 현지 연예인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수지와 김우빈은 당초 계획한 팬미팅이 행사 이틀 전 급작스럽게 취소되기도 했다.

중국측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지난해 7월부터 나타났다. 주한민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배치가 결정적이었다. 물론 중국은 공식적으로 사드 배치가 한-중의 경제와 문화 교류와의 연관성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대놓고 한류 콘텐츠를 거부하고 있어 한류를 토대로 진행하는 브랜드들의 타격이 계속되고 있다.

연예계에 불어닥친 한한령의 불길은 홈쇼핑업계로 옮겨 붙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연예인을 모델로 쓰는 상품이나 한국음악 등을 방송하지 말라는 구두 지침을 내렸다.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은 각 지역방송국에 이같은 지침을 내렸고 이들 방송국들은 계열 홈쇼핑방송에 이를 전달했다.

중국 홈쇼핑업체들은 한국산 제품을 판매할 때 한류스타를 모델로 세우거나 한국 아이돌가수의 노래를 배경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방침에 모델은 물론 음악까지 사용할 수 없어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홈쇼핑업계는 중국 모델을 사용하고 배경음악도 팝송이나 중국음악으로 바꾸고 있다. 그중 한류스타를 내세운 중소‧중견기업들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홈쇼핑사들도 중국 사업에 고충을 겪고 있는데, 특히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홈쇼핑이 강력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영악화로 2010년 인수한 ‘럭키파이’도 정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에 있는 롯데 계열사에 세무조사, 소방위생안전점검 등을 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백화점, 마트, 홈쇼핑 등이 모두 실적이 좋지 않다”며 “실적이 좋지 않아 럭키파이에 대해서는 구조조정 등 정리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철수는 아니지만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변경 등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홈쇼핑은 합작사 귀주가유구물집단유한공사와의 갈등으로 지난 4월부터 현대가유홈쇼핑의 판매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씨제이오쇼핑 역시 2012년 동방씨제이 지분 26% 중 11%를 현지 미디어사에 매각했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업계가 중국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한령으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며 “사업을 지속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中 한류금지령…‘문화‧유통‧여행’ 총 비상
“한류스타 안돼!”…본격적인 한한령

 유커 줄면서 면세점과 여행업계 ‘울상’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면세점과 여행업계는 한한령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중국인 관광객이 만들어내는 경제효과가 상당해서 입국금지 등의 제재가 바로 수익 악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에 방문하는 중국관광객수는 2000년 44만명에서 2015년 612만명으로 14배 가까이 급증했다. 머지않아 1000만 유커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올해 유커가 창출할 생산효과는 27조6647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2011년 8조5165억원보다 3.2배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한한령이 본격화되면서 여기에 제동이 걸렸다. 앞서 2015년 메르스 사태와 위안화 평가절하 등으로 주춤한 유커들의 방문이 한한령을 기점으로 매달 20%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조가 계속되면서 중국인 매출 비중이 60~70% 차지하는 면세점의 매출은 올해 6.5% 증가한 13조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2조2000억원으로 32.5% 증가한 것에 비해 초라한 성적이다.

계절적 요인도 있지만 고려하더라도 사드배치 보복의 영향이라는 견해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현지 여행사들에게 여행객 수를 전년 대비 20% 가까이 줄이고 쇼핑 역시 1일 1회로 제한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여유국은 저가 단체관광의 폐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현지 쇼핑 횟수를 위반할 경우 약 30만위안(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국내 백화점과 면세점 등은 판촉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방문이 급증한 젊은 유커들은 케이팝과 한류드라마 등 한국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콘텐츠 개발은커녕 면세점 투어나 과도한 쇼핑 일정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하지 않는 쇼핑에 서울 시내 고궁만 방문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유커가 부지기수다. 거기에 가짜 명품을 비롯해 음식점과 택시 등 바가지 요금까지 횡행하면서 중국인들이 한국 여행 코스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주변 국가인 일본과 동남아 등으로 중국인 관광객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만의 콘텐츠 발굴…“‘유커’ 중심 돼야”

많은 전문가들은 단순 쇼핑을 넘어 유커들의 관광 만족도를 높일 한국만의 콘텐츠 발굴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성과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감동 있는 환대서비스는 물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한옥 체류‧한류 콘텐츠 결합상품, 고급 휴양을 위한 크루즈여행과 해양레포츠 등의 관광상품과 자원 개발이 시급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로 한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전지현이 먹던 치맥(치킨과 맥주)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난해 110만명이 참여한 대구 치맥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또 지난해 5월 2차례에 걸쳐 한강 반포지구에서 열린 중국 중마이과기발전유한공사 임직원의 삼계탕 파티 등도 테마 관광의 좋은 예다.

강원도 태백에 마련된 한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군부대 막사가 위치한 태백의 한보탄광, 정선 삼탄아트마인, 경기 파주의 캠프그리브스 등은 이미 유커들에게 필수 방문지로 떠오르고 있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저가 여행상품을 통해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낮은 호텔 서비스, 쇼핑에만 치우친 관광 등으로 만족도가 낮다”며 “일본처럼 적극적인 유커 유치전략, 관광콘텐츠 활성화를 통해 높은 관광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커 줄면서…유통업계 심각한 타격
부정하던 中당국…한한령 결국 인정

 식지 않은 한류…시민들 반감은 ‘거짓’ 들통

국내에서 한한령 문제를 지적하자 중국 당국은 한반도 사드배치와 관련해 한류 콘텐츠 수입을 제한한 적이 없고 민간 차원에서 반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중국 인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류 콘텐츠 수요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일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가 중국 검색 포털사이트 바이두가 제공하는 ‘바이두 지수’를 분석한 결과, 한한령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난해 하반기에도 한류 콘텐츠에 대한 검색 빈도가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한류 콘텐츠 유통‧확산을 차단하고 있으나 중국인들의 한류 바람까지는 막지 못했다. 결국 민간 차원에서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중국 당국의 발표는 ‘거짓말’로 들통났다.

바이두 지수는 바이두 이용자들의 특정 키워드 검색 빈도를 측정해 수치화한다. 국내에서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를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2~3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태양의 후예’가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송되던 시기에 3만 포인트를 웃돌던 한국드라마 바이두 지수는 태양의 후예가 종영한 후 일시 하락했지만 SBS ‘푸른 바다의 전설’과 tvN ‘도깨비’가 시작되자 다시 2만8000~2만9000포인트로 회복됐다.

두 드라마는 한한령이 불어닥친 이후에 상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중국에 정식으로 수출하지 못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중국 인민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서 한국 드라마를 접하기 위한 행동이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영화 바이두 지수 역시 4~6월에는 4만2000~4만3000포인트를 보이다 가을쯤 주춤했으나 지난달에는 중국 당국의 조처를 비웃듯 4만1973포인트로 다시 크게 늘었다.

콘텐츠 관련 수입이 전면 금지되면서 한류스타들의 출연작도 정식 소개되지 못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도깨비’의 주인공인 배우 공유는 중국 인터뷰 사이트 도우반이 지난달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출연작이 없었던 배우 김수현 역시 이번달 18일 기준 중국 엔터테인먼트 데이터기관 브이링크 에이지의 스타 매체 지수에서 6위에 올라있다.

 中 한한령 결국 인정?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 당국은 지난 4일 베이징에서 중국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과의 자리에서 한국 연예인의 출연을 제한하는 등의 규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야당 의원들이 사드배치 결정 이후에 한한령 등 한국과 관련한 각종 규제 중단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가급적 이른 시일에 국면 전환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측이 처음으로 한한령이 이뤄지고 있다고 시인한 셈이다.

이어 중국 측은 야당 의원단에 한반도 사드배치 확정 이후 중국 국민들이 한국에 감정이 악화돼 TV에서 한국 드라마나 아이돌이 나오면 감정이 더 나빠질 수 있어 취한 조치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의원단은 한국 연예인 출연제한과 한국 배터리 보조금 인하, 한국행 여행 20% 제한, 한국행 전세기 제한 등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중국은 “한국이 사드 배치에 속도를 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북핵문제 해결과 사드 관련 양측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협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 한국 여행과 관련해서는 중국인 여행객과 대중 무역액이 증가했다며 상관성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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