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버린 ‘삼성 방패’ 안도 끝 당혹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따라 SK와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들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방패가 무너지면서 다른 재계 총수들도 특검이나 검찰 수사를 피하기 어려운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최태원 SK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은 사면을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 역시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와 관련한 의혹에 휩싸여 이번 최순실 정국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최태원 SK 회장은 사면을 위해 대가성 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기업 범죄로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지난 2015년 7월 24일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했다. 독대 2주일 뒤인 2015년 8월 13일, 박 대통령은 ‘기업인 사면 반대’라는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 최 회장을 특별사면했다.

이후 SK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101억원을 출연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검토했으며,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을 통해 사면사실을 전달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밝혀지는 진실들

최근에는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와 그의 측근인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가 최 회장의 사면을 미리 알았다는 내용의 녹취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 최태원 SK 회장. 사진=뉴시스

지난 16일 KBS 보도에 따르면 고 전 이사는 김 전 대표와 통화에서 “최태원이 먼저 나오고 회장을 바꾸는 체계로 가기로 했어. 지금 최태원 대신 임시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도 힘이 안 되는 거야. 말도 잘 전 달도 못하고, 그래서”라고 말했다. 통화는 지난 2015년 최 회장의 사면 발표가 나기 이틀 전 이뤄졌다.

앞서 지난달 11일에는 최 회장의 사면 결정 전 구치소에서 SK 임원과 나눈 대화 녹취록에 ‘왕회장 귀국 결정’이라는 암호가 등장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날 SBS는 최 회장이 사면 결정 사흘 전인 지난 2015년 8월 10일, 구치소에서 김영태 SK 부회장을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 회장은 김 부회장의 위로에 “견디기 힘들 긴 뮈. 며칠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답했고, 이에 김 부회장은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며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SBS에 따르면 특검은 ‘왕 회장’을 ‘박근혜 대통령’으로, ‘귀국’은 ‘사면’으로, ‘숙제’는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김 부회장이 최 회장에게 전한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을 결정했고, 우리도 미르·K스포츠재단을 지원해야 한다”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당시 SK그룹 측은 “2015년 8월 10일 오전 10시부터 사면심사 위원회가 개최됐고, 이미 다양한 루트 및 언론을 통해 최 회장이 사면 대상인 것은 알려진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재계 ‘제3자 뇌물’에 모두가 죄인?
고영태도 알았던 댓가(?)성 최태원 사면

이어 “(최 회장과 김 부회장의 대화는) 당시 광복절 특사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진행된 것인 만큼 SK그룹이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투자·채용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의미한다”며 “또 당시에는 미르·K스포츠는 언급도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CJ그룹은 ‘K컬처밸리’ 투자와 이재현 회장의 ‘사면’ 간 유착관계 의혹을 받으며 특검 수사 대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이재현 CJ 회장. 사진=뉴시스

이 회장은 탈세 및 횡령 혐의로 2013년 기소돼 대법원까지 갓으나, 2015년 12월 징역 2년6개월 실형이 확정됐다. 당시 CJ 측은 재상고를 추진하며 격렬히 저항하다가 지난해 7월 이 회장의 건강악화를 이유로 들며 재상고를 돌연 취하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 회장은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CJ와 청와대의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손경식 CJ 회장은 2014년 11월, 2015년 7월 박 대통령과 두 차례에 걸쳐 개별면담을 한 바 있다.

◆독대 후 사면, 우연일까?

손 회장은 2014년 11월 27일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이뤄진 박 대통령과의 첫 독대에서 이 회장의 건강악화 문제를 거론했고, 박 대통령은 이 회장의 건강을 염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 회장은 2015년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러 온 박 대통령을 안내하면서 이 회장의 건강 문제를 다시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의 2015년 12월 27일자 기록에 ‘이재현 회장 도울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이 쓰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더욱 짙어지는 상황이다. 해당 수첩에는 ‘재상고→기각→형집행정지신청(재수감 검찰 결정)’이라는 문구도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박 대통령이 재상고가 기각되더라도 형 집행정지 결정을 통해 이 회장을 도우려고 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안 전 수석은 법원과 헌재 등에서 자신의 업무수첩에 ‘대통령의 말씀도 담겨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청와대에서 이미경 부회장 퇴진을 요구한 사실도 골칫거리다. 2014년 말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VIP(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 부회장 퇴진을 요구한 사실이 밝혀진 것. 결국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행을 택했다.

CJ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13억원을 출연하고, 현 정권에서 ‘문화계 황태자’로 급부상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주도한 ‘K컬처밸리’ 등 문화융성사업에 1조4000억원대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 지원하는 등 박근혜 정부에 협력적인 태도를 취한 바 있다.

▲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뉴시스

롯데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 획득에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015년 11월 면세점 특허심사에서 탈락해 월드타워점을 내준 롯데는 지난해 4월 정부가 대기업 3곳에 면세점을 추가로 내주겠다고 결정하면서 기사회생했다. 롯데그룹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각각 28억원, 17억원을 출연했다.

▲ 사진=뉴시스

만약 수사에서 롯데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자금이 뇌물로 드러날 경우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면세 사업권은 다시 취소될 수 있다. 그간 관세청은 “만약 선정된 사업자에 문제가 있을 경우 사업권을 반납하도록 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또한 롯데는 압수수색 무마를 대가로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박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월 14일 회동을 가졌다. 독대 후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진행 상황을 챙겨보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재현 사면 논의 후 출연금 낸 ‘CJ’
신동빈 수사 가능성 ‘아슬아슬’ 면세점

이후 롯데그룹은 지난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6개 계열사를 통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송금했다. 며칠 뒤인 지난 6월 2일 검찰은 롯데호텔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1주일 뒤인 9일 K스포츠재단은 롯데그룹에 70억원을 반환하겠다는 연락을 했다. 다음날 검찰은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 무마를 대가로 금품을 건넸다가 무위로 돌아가자 돌려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음 타깃은 누구?

당초 재계는 이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고, 이후 검찰 수사까지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재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 혐의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다른 기업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기업들은 관련 의혹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관련 조사가 이뤄지면 성실히 임하겠다는 정도의 반응 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방패’로 여겨지던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앞서 기각 결정으로 한숨을 돌렸던 다른 기업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 기업들은 당분간 정상적 경영활동 보다는 수사 대응에 총력을 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기업들 줄줄이 법정에
포스코 권오준‧KT 황창규, 최순실 재판 선다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과 황창규 KT 회장이 다음달 초 최순실‧안종범 형사 재판의 증인으로 나선다.

26일 법조계에 다르면 최순실 씨 등의 직권남용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가 3월 13일 신동빈 롯데 회장과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사장), 이석환 상무를 증인으로 부른다.

이어 14일에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황은연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하고, 21일에는 황창규 KT 회장과 김인회 부사장 출석이 잡혀있다.

이들은 지난 국정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과 관련 대가성 의혹을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최 씨 등은 포스코를 압박해 펜싱팀을 창단하고, 더블루K가 해당 팀의 매니지먼트를 맺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KT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지시로 차은택 전 창조경제단장이 추천한 인사를 임원으로 채용한 점과 최씨 소유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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