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평 독방신세 이재용, 오너리스크 후폭풍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재계 서열 1위 수장이 구치소에 갇히며 영어의 몸 신세가 됐다. 삼성으로서는 창사 79년 만에 처음으로 총수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선대 오너인 조부 이병철 전 회장과 부친 이건희 회장도 피해간 구속 수감이다. 삼성은 해외기업 인수와 대규모 투자,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 쇄신안 마련 등 주요 사업의 차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재용의 ‘뉴 삼성’도 사실상 올스톱 됐다. 파이낸셜투데이는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놓인 삼성을 긴급 진단해 봤다. [편집자 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평에 갇혔다.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지난 17일 구속 수감된 이 부회장은 연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삼성 총수 구속은 그룹 모태인 ‘삼성상회’가 1938년 설립된 이후 처음이다.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은 1996년 ‘사카린 밀수사건’ 수사로 검찰에 소환됐지만 사태에 책임을 지고 다음해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며 물러났다가 15개월 뒤 복귀했다. 이 사건으로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이병철 선대회장의 차남 이창희 씨는 당시 총수가 아닌 한국비료 상무였다.

◆컨트롤타워 잃은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할 때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지만 집행유예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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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그룹은 당장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투자와 글로벌 비즈니스에 차질을 빚게 됐다.

실제로 다음달 중국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이 부회장의 참석이 어렵게 됐으며 같은달 열리는 ‘비즈니스 카운슬’ 참석도 사실상 물건너갔다.

보아오포럼은 중국 정재계 인사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 경영인들이 한 데 모여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는 행사로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부회장은 2013년 이사를 맡은 이후 중국 정재계 관계자들과 활발한 교류 활동을 펼쳐왔다.

비즈니스카운슬은 미국 산업‧금융계를 대표하는 CEO들이 모여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회원이다.

선대 이병철 이건희도 피한 총수 최초 구속
뉴삼성 플랜 올스톱…투자‧글로벌 사업 차질

4월 예정인 피아크크라이슬러그룹(FCA)의 지주회사 엑소르 이사회 참석도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2012년 엑소르 사외이사직을 맡은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전장사업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아왔다.

7월에는 이 부회장이 15년 간 참석했던 ‘선밸리 콘퍼런스’가 개최될 예정이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티아 나델라 아미크로소프트 CEO 등이 참석하는 행사로 IT 업계에서의 미국내 인맥관리를 위해서는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로 꼽힌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마저도 참석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룹을 아우르는 빅딜이나 조직개편 등도 이 부회장의 신변 결과가 최종적으로 확정될 때까지 미뤄질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부터 경영 전면에 등장 ‘뉴 삼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삼성을 그려 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과감한 인수‧합병(M&A)이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상반기부터 현재까지 30여건에 달하는 M&A를 단행했다. 알려진 M&A만 28건으로 매월 1건 이상의 M&A를 단행한 셈이다.

지난해 한국기업 사상 최대 금액인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들여 미국의 자동차 전장 기업인 하만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2012년 사물인터넷(IoT) 업체 스마트싱스, 2015년 삼성페이 원천기술을 제공한 루프페이, 2016년 인공지능(AI) 업체 비브랩스,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업체 데이코 등이 삼성전자 품에 안겼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M&A는 자취를 감췄다.

같은 시기부터 삼성은 그룹 일정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12월 단행된 사장단과 임원인사가 연기됐다. 올해 상반기 내놓기로 한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검토결과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당시 6개월 내 로드맵을 그린다는 방침이었지만 총수 유고 사태로 밑그림이 나오기도 어렵다는 관측이다.

◆사장단 회의 중단

당분간 매주 수요일에 열어온 사장단 회의도 당분간 중단된다. 지난 22일로 예정됐던 수요사장단회의는 취소됐고, 그 이후에는 아직 일정이 결정되지 않았다. 3월 1일은 공휴일이라 회의가 없다.

빅딜‧조직개편‧인사‧대외 신인도 전방위 타격
옥중경영 위기, 그룹 ‘이재용 구하기’ 총력

수요 사장단협의회는 수요일마다 삼성의 계열사 사장단이 모여 강연을 듣고 미래 먹거리와 장기 플랜을 고민하는 자리다. 연말‧휴일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가전 공장 신‧증설 등 추가 투자까지 필요한 상황이지만 새해 투자 계획 수립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대외 신인도나 이미지 타격도 심각한 상황이다. 외신들은 한국 최대 기업 총수의 구속 사실을 앞다퉈 전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미국 기업 평판지수는 7위에서 49위로 곤두박질 쳤다. 전년에 비해 평판이 가장 많이 훼손된 기업을 묻는 질문에도 상위권에 올랐다.

삼성은 일단 ‘총수 구하기’에 총력을 쏟는 비상체재를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해체가 예고된 미래전략실이 총수 부재 기간동안 불가피하게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실장인 최지성 부회장과 차장인 장충기 사장 역시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활동반경에 제약이 많아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에 따라 삼성은 당분간 각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끌어갈 방침이다.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나머지 계열사는 각 사장들이 이끌어가는 사장단협의회 체제로 경영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당초 우려와 달리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에 성공, 일단 한숨을 돌린 상황이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극복할 차세대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은 오는 3월말 미국에서 데뷔전을 치른다.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 부회장 구속 소식이 전해진 직후 사내망에 ‘임직원께 드리는 글’을 올렸다.

사장단은 “그룹이 맞이한 초유의 사태로 인해 충격과 상심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와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온 저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영진이 직원들의 노력과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이 오는 3월께부터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법정에서의 무죄 입증을 위해 법무팀을 중심으로 준비작업에 전력을 쏟고 있다.

◆‘피해자’ 강력 피력할 듯

삼성은 그간 주창해온대로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으며,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라는 점을 법정에서 강력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논리는 이 부회장은 대통령의 강요를 받은 ‘피해자’일 뿐이며 삼성물산 합병 등을 최순실 지원의 대가로 엮는 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대체적으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사안의 중대성 등에 초점을 맞춘 반면 실제 대판은 철저히 증거 유무를 따지는 만큼 삼성이 재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이재용 향후 재판 일정은?
양측 불복 가능성…3심까지 갈 가능성 농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당분간 구치소독방에서 미결수로 지내며 남은 수사와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찰은 피의자를 구속한 지 10일 이내(연장 땐 20일 이내)에 기소해야 한다. 이에 따라 17일 구속된 이 부회장의 1차 기소 시한은 26일가지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 기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1심 선고가 이뤄진다. 2심과 3심은 전심의 판결선고일로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재판은 3심까지 갈 것으로 예측된다. 각각의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검찰이나 이 부회장이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고 형량은 어떨까.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더불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이다. 뇌물 공여죄의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위증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재산국외도피죄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이며, 횡령죄의 경우 액수가 50억원을 넘기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그렇다면 이 부회장이 중간에 풀려날 수는 없는걸까. 삼성은 ‘구속적부심’과 ‘보석’ 제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구속적부심은 기소되기 전 구속의 타당성 여부를 법원이 다시 판단하는 절차로, 피의자가 관할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보석은 보증금 납입을 조건으로 석방하는 제도로, 보증급 납입 즉시 석방되지만 주거는 일정구역 내로 제한받는다.

하지만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의 석방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구속적부심을 통해 이 부회장 석방을 결정하면 기존 영장실질심사에서 내린 결정을 법원 스스로가 번복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보석 또한 이 부회장의 혐의가 중형 선고가 가능한 중범죄이기에 석방 결정을 받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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