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시행으로 타격?…소비 침체도 큰 원인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5개월이 지난 가운데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로 시민들이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란 법률)이 시행된 지 5개월을 넘어가면서 그간의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특히 음식점과 축산‧화훼 농가의 매출이 하락해 시름을 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에선 개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직까지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은 영향이 크다고 분석하면서 김영란법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 김영란법 타격 ‘농가’…“아직까진 수요 침체 원인”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유독 한우업계가 달갑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한우 특성상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김영란법에서 제한한 식사(3만원)‧선물(5만원) 상한액이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우를 공급하는 농가는 물론 유통가들까지 반발하고 있다.

한우협회는 “최대 성수기인 설 명절에 김영란법으로 선물세트 수요가 급감하면서 전년 동기간에 비해 가격이 떨어지면서 농민들이 피해를 봤지만 정책 당국은 대책은커녕 물가관리 타령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올해 설에 국산 농축산물 선물의 판매액은 총 124억2200만원으로 지난해(167억원)보다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축산업 및 외식업 파급영향’ 보고서를 통해 한우의 연간 생산액은 2015년 대비 2286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외식업 위축에 따른 농축산물의 생산 감소 영향까지 감안하면 전체 생산액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최근 농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를 무조건 김영란법 영향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한우 가격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소비침체 영향이 더 크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축산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김영란법으로 인한 한우 가격 변동은 알 수 없다”며 “한우값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소비 침체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 음식점들의 타격이 크다…“법인카드 사용금액은 오히려 늘었다”

매일 먹는 밥값 규제가 3만원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지난해 4분기 일반음식점의 생산지수가 91.7로 전년대비 4.9% 하락했고, 같은 기간 음식점 및 주점업 종사자도 3.1% 감소했다는 것을 근거 삼아 청탁금지법 식사비 한도를 조정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계류중이다.

이와 관련해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3만·5만·10만원의 기준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면서도 “5년 반에 걸쳐 격론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법인데, 어떤 정도의 소비 위축 효과가 있는지 최소한의 검증도 안 돼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 이후 타격을 입은 곳은 고가의 식당과 노래방 등 접대가 만연했던 유흥업소들이었다. 유흥업 지출비용을 제외하고는 법인카드 사용액은 되레 늘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3개월 간 법인카드 사용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9% 증가했다. 개인 신용카드 사용액도 전년 동기보다 9.3% 늘었다. 그러나 꽃집(화원), 술집(유흥주점), 노래방 등은 매출이 감소했다.

친목 모임이나 접대가 일부 축소되면서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 사용액도 11.2% 감소했고 노래방 사용액은 5.4% 줄었다. 반면 일반음식점에서 사용한 법인카드 금액은 1.8% 증가했다.

고가의 음식점 사용액은 줄었지만 일반 음식점은 더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KB국민카드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100일 간 법인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 상대적으로 비싼 일식당 매출은 1.9% 줄었지만, 한식당(11.8%)과 중식당(14.8%) 사용액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었다.

◆ 경조사비 줄었지만…“이전지출은 혼인 감소 영향도 있어”

경조사비도 감소했지만 김영란법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이전지출 비용은 17만946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7.2% 감소했다. 이전지출은 따로 사는 부모에게 보내는 돈 등이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 경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따라서 2010년 4분기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이전지출 비용이 감소한 것은 청탁금지법의 영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지출 감소는 경기 침체로 인한 소득 약화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최근 줄어든 결혼식이 다소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같은 보고서에서 소득 증가가 감소했음이 나타났고 연간 혼인 건수도 2011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 지난해 연간 혼인 건수는 28만1700건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74년 이후 가장 적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조사비를 포함한 가구 간 이전지출의 감소는 경기 침체로 인한 소득 약화가 가장 큰 원인인 가운데, 혼인 감소 역시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