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 사기는 보험가입자가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것을 말한다.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에게 보험료 인상을 초래하고 보험산업의 신뢰를 깨는 것이므로 지탄받는다. 보험사들과 당국은 보험사기를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급기야 지난 해 3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보험사기는 공공의 적이므로 당연히 근절돼야 한다.

그런데 ‘보험 사기’ 보다 더 나쁜 ‘보험사 사기’가 있다. 보험사 사기는 보험 사기와 정반대로, 보험사가 보험가입자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것을 말하는데, 약관에 정한 보험금을 부당하게 지급하지 않거나 삭감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보험사 사기가 많아질수록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억울한 가입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보험제도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게 된다. 그래서 보험사 사기도 당연히 근절돼야 한다.

보험사 사기의 전형적인 사례는 보험사들의 무분별한 채무부존재소송 제기와 화해신청서 작성 요구다.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에게 채무부존재소송을 제기하여 겁박한 후, 보험사가 고용한 손해사정사를 보내 보험금 삭감 합의를 종용하는가 하면, ‘화해신청서’란 해괴한 양식을 제시하며 “작성해서 제출하면 보험금 일부를 주겠다”는 것이다. 양식에는 보험사가 삭감, 제시한 “보험금을 받고 향후 보험사에 민사‧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보험사들이 환자 주치의 진단과 다른 보험사 자문의 소견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일부만 지급하는 일이 자주 발생되는가 하면, 보험금 심사담당 임직원이 보험금을 안 주거나 덜 줄수록 후하게 평가를 해서 상여금을 더 주고 승진 시 유리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험사가 해당 임직원들에게 보험금을 떼 먹으라고 앞장서서 유도한 것이니 중대한 범죄이고 명백한 보험사 사기다.

논란이 되었던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건’도 보험사들이 약관을 잘못 만든 것이 화근이었는데, 보험사들은 약관에 정한 재해사망보험금(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당국의 지급 권고도 무시했다. 그러면서 ‘소멸시효’라고 거짓 주장하며 본질을 왜곡했고, 이것도 모자라 “주주배임죄에 해당된다”고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위로금’, ‘자살예방기금’이라며 꼼수를 부리다가, 금감원 중징계가 발표된 후 영업 정지와 CEO 연임 불가가 현실화되자 막장에서 항복했다. 결국 보험사들은 돈 주고 중징계를 피했고, 금감원은 원칙 없는 고무줄 판결을 내려 나쁜 선례를 남겼다. 해당 보험사들은 “소비자 신뢰를 위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나 보험가입자들에겐 한마디 사과 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런 거짓 정신으로 보험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또한 최근에 도를 넘은 보험사 사기도 발각됐다. 퇴원 뒤 병명이 적힌 진단서로 보험사에 진단비를 청구했는데 거절됐다. 알고 보니 보험사 직원이 해당 병원을 찾아가 진단비를 안 줘도 되는 병명으로 진단서를 새로 발급받아 갔다는 것이다. 진단서는 환자 본인에게만 발급할 수 있으므로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현장에서 보험사가 진단서를 고쳐가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보험사 관계자가 실토했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보험사의 주된 의무는 보험금 지급이므로 보험사들은 고객만족, 정도 영업을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해야 한다.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은 주된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보험사 사기’를 행하는 것이다. 이런 보험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으므로 문을 닫아야 한다.

보험 사기 발생 시 종전에는 형법상 사기죄를 적용해서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했지만,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시행으로 보험 사기죄를 적용하여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반면, 보험사가 보험 사기 조사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미룰 때는 과태료 1000만원이 고작이다. 누가 봐도 형평에 크게 어긋난다.

당국은 보험 사기를 잡는다며 매번 설레발 칠 것이 아니라 보험사 사기를 먼저 잡아야 한다. 보험사 사기로 인해 억울한 가입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보험사를 강력 단속하고 처벌하라는 얘기다. 보험가입자 보호를 위해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아울러 당국은 보험금심사담당자들의 평기기준을 조속히 전수 조사해서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하고, ‘보험사기방지 특별법’도 당연히 보완해서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이 억울하게 보험사기범으로 몰리지 않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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