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2015년 일본의 생산활동인구를 보면 일본의 경제 침체는 1990년 시작된 반면 생산활동인구는 199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사진=FRED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올해는 통계청이 발표한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감소 기점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자료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올해 3704만명을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2040년 2887만명으로 줄어든다.

조혼인률(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도 1996년 9.4건을 기록한 뒤 감소해 올해 5.5건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신생아 수도 40만6000명으로 30만명 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국내 총 인구는 2032년을 기점으로 감소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구절벽(한 국가의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는 현상)을 눈앞에 두고 여러 매체에선 비혼(선택적 미혼)과 출산율 감소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도 인구 감소세를 막기 위해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2011년부터 5년간 60조원에 육박하는 국가재정을 투입해왔지만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구절벽 가설은 경제 논리와 곧잘 연결된다. 인구절벽이 소비 축소를 불러 경제 펀더멘털을 악화시키고 다시 인구축소 악순환으로 돌아온다는 논리다. 특히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드는 올해 들어 인구절벽을 경계하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인구절벽 가설은 진실인가?

문제는 데이터 상으로는 인구 감소세와 경제 위축 간에 직접적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 미국, 독일, 영국 등 생산활동인구가 감소한 국가들의 경제가 나빠진 흔적을 찾기 힘들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저서 <인구와 투자의 미래>에서 인구절벽 가설은 가설일 뿐임을 지적했다. 저자는 “인구가 감소한 나라 중 실제로 장기 불황을 경험한 나라는 오직 일본뿐”이라며 “일본의 사례가 ‘전부’인 양 이야기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한 2006년 이후 2015년까지 미국의 경제 규모와 주가는 각각 1.2배, 1.9배로 커졌고 부동산 가격도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 수준까지 회복했다.

1990년대 이후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독일도 20년만에 경제 규모는 1.3배, 부동산 가격은 1.1배, 주가는 5.2배 상승했다.

영국도 2005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며 인구 감소의 우려가 컸지만 이후 10년간 경제 규모는 1.1배, 부동산 가격은 2.6배, 주가는 1.1배 올랐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금리 인하 특수를 누렸지만 1990년 초 일시에 경제가 무너졌다. 하지만 일본의 생산활동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세를 보인 시점은 1996년으로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90년과는 차이가 있다. 또 일본의 생산활동인구가 여전히 감소세임에도 실질지가·주식지수는 2013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사례를 통해서도 인구 감소와 경제의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데이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인구 절벽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를 무너뜨리는 주된 원인이라는 통념은 맞지 않다. 또 인구 변화가 경제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그보단 한 국가의 경제 정책이나 국내·외 정세 등이 더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일본의 경제 위기도 인구감소보단 안전자산인 엔화의 강세와 일본 정부의 잘못된 금리·부동산 정책이 더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중앙은행이 채권이나 회사채를 직접 매입해 시장에 자금유동성을 확보하는 정책)를 시행한 2012년부터 침체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비혼은 큰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혼 연령대는 남자 32.8세, 여자 30.1세로 10년 전에 비해 각각 2.3세 증가했다. 특히 지난 10년 간 초혼 연령이 일정하게 증가한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결혼을 대하는 관점도 과거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결혼을 ‘선택’이라 보는 비율은 2년 전에 비해 4.0% 증가한 42.9%까지 늘었다. 물론 비혼주의자들을 두고 좋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사회 변화로 인한 과도기적 측면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물론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를 낙관할 수는 없다. 한 국가의 경제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데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춘욱 팀장은 저서에서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며 “저출산 대책을 지금부터라도 성공적으로 시행하면 ‘인구 감소’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 부부간 가사분담을 활성화하는 것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스웨덴의 사례를 들며 남성과 여성이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활성화할 것을 제언했다.

또 몇몇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족 유형을 인정하는 문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들은 전형적인 가족 외 한부모 가족과 다문화 가족, 입양가족, 비혼·동거가구 등 다양한 가족 유형을 인정하고 문화·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출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교육을 활성화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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