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전문가들, 부동산 실수요자·생계 대출 정책 세우라 입 모아

▲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안내문.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정부의 대출 규제로 안정을 찾던 가계부채가 비은행권과 P2P대출, 대부업 등의 중금리대출이 늘어나면서 다시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각종 규제 정책에 이어 은행권 가계대출 총량 규제라는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대출 수요가 시중은행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가 무작정 규제 고삐를 당기는 가운데 투기세력은 물론 부동산 실수요자나 생계형 대출자들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시중은행 보다 높은 이자를 내며 돈을 빌리는 것으로 보인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계대출 증가분은 15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17조9000억원) 대비 14.5%p(2조6000억원)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 중 중도금대출(집단대출)의 신규 승인액(9조6000억원)이 전년 동기(14조8000억원) 대비 35.2%p나 줄며 감소세를 주도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중은행에 적용한 ▲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 ▲원리금 분할상환 제도 적용 등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금감원은 “최근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는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 노력과 시장금리 상승 우려 등으로 점차 안정화되는 추세”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보면 시중은행의 대출이 3조9000억원 감소한 반면 제2금융권의 대출은 1조3000억원 증가했다. 제2금융권의 경우 신협, 축협, 우체국예금 등 대부분의 상호금융에서 3000억원 줄었지만 농협과 새마을금고 등에서는 1조6000억원이 늘어나면서 감소분을 앞질렀다. 

지난 12일 한국은행도 지난 2월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액이 3조9614억원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분이 1조2430억원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지속적으로 둔화된 반면 제2금융권에선 2조7184억원으로 은행권의 대출 둔화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주목할 부분은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의 주택담보대출 감소 추세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집단대출 규제 이후 ▲2016년 12월 1조1036억원 ▲2017년 1월 –1조3317억원로 크게 줄었고 2월에도 4092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반면 비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2016년 12월 2조2419억원 ▲2017년 1월 1조3729억원에 이어 2월에도 1조4561억원으로 은행권의 급격한 감소세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감소분 일부가 제2금융권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대출 규제 풍선효과에 중금리대출 시장 호황

비은행권의 대출수요가 커지면서 중금리대출 시장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3일 모습을 드러낸 제1금융권 온라인은행인 케이뱅크는 신용 7등급 수준의 저등급자들도 4~5%대의 중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6월 출시를 앞둔 카카오뱅크 또한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한 중금리대출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은행권 또한 중금리대출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SBI저축은행이 케이뱅크 출범 당일 최저 금리를 5.9%까지 낮춘 상품을 출시하는 등 저축은행들도 중금리대출 경쟁에 뛰어들었다.

정책금융 상품인 사잇돌대출의 경우 지난 3월 말까지 총 대출액 5500억원을 돌파했다. 정부도 중금리대출의 수요를 감안해 올해 말까지 공급액을 1조원 더 늘리고 상호금융권까지 상품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P2P 대출시장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P2P 연구업계인 크라우드연구소는 올해 1분기 취급 대출액은 3340억원이며 누적 대출액은 이번달 내로 1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라 밝혔다. 현 추세대로라면 P2P업계의 대출 규모는 올해 안에 1조5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규제에 서민들 대출 사각지대로 떠밀려

금융 전문가들은 대출 시장의 풍선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 대출 총량 규제에 나서면서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도금 집단대출을 막는 등 은행들의 돈줄을 틀어막아 서민들이 고금리대출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제2금융권도 정부가 돈줄을 조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에 BIS 비율(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저축은행의 BIS 비율은 기존 7.0%에서 8.0%로 늘어난다.

또한 지난달 13일부터 상호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올해 가계대출 성장률 상한선을 5.1%로 정해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제2금융권은 대출 규모를 줄여야하는데 그 대상은 신용평가에 품이 많이 들고 수익성도 낮은 중금리대출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이번 상한선 결정에 햇살론, 사잇돌대출과 같은 정책금융상품이 제외됐지만, 마이너스 통장 등 생계형 대출의 수요도 있는 만큼 제2금융권에서조차 대출이 어려워질 경우 생계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이 대부업 등 고금리대출로 몰리게 될 여지도 있다.

때문에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 규제와 같은 성과지향적 가계대출 축소책에 매달리기보단 투기성 대출을 막으면서 부동산 실수요 대출과 생계형 대출에는 숨통을 터주는 식으로 정책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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