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인맥 테마주 요동치고 작전세력 기승… 개인투자자만 피해

▲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과 금융감독원,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한국거래소는 2016년 12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서 테마주 등 이상급등종목 신속대응을 위한 관계기관 합동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선 ‘테마주’가 또 기승이다. 주요 정책 공약과 연관되거나 특정 후보와 인맥이 있는 상장기업들의 명단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일찌감치 테마주 ‘경계령’을 내리고 관련 주식들을 모니터링하며 주가조작 예방조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소위 ‘작전세력’의 주가조작 움직임을 선제적으로 막지 못하면서 투기세에 편승한 ‘개미’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

◆인맥‧공통공약 관련 주식들 ‘오르락 내리락’

▲ 4월 21일 장 마감 기준 안랩 주가. 출처=네이버 증권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안랩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주식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직접 창업한 회사면서 4차 산업혁명과도 밀접하게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 꾸준히 6만원대를 유지하던 안랩의 주가는 각 당의 경선이 마무리되기 시작한 3월 중순부터 치고 올라 지난달 31일에는 14만9000원을 기록했다. 보름도 안돼 200% 넘게 폭등한 것이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던 주가는 지난 4일 큰 이유도 없이 10만8000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시가총액 3725억원이 하루아침에 증발했다. 안철수 테마주로 주목받던 써니전자와 다믈멀티미디어의 주가도 20%넘게 떨어져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후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경합세를 보이며 안랩 주가는 13만원대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지율 격차가 10%넘게 벌어지면서 21일 종가 기준 9만1600원까지 내려갔다. ‘대선 테마주’란 말로만 해석 가능한 수준의 급격한 변화다.

▲ 4월 21일 장 마감 기준 우리들제약 주가. 출처=네이버 증권

 

 

 

 

‘노무현 전 대통령 주치의의 아내가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대표적인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된 우리들제약 또한 지난 한달 새 급격한 변동세를 보였다. 지난달 24일을 기점으로 50%나 치고 올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지만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와 경합세를 보이는 가운데 열흘 만에 원상태로 돌아왔다.

21일에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노무현 정권 당시 정부가 북한과 내통한 증거로 보이는 문건을 하루 전 공개하면서 우리들제약 주가는 전장 대비 3.66% 떨어졌다.

그밖에 ‘유승민 테마주’로 알려진 서한과 ‘홍준표 테마주’라 불리는 세우글로벌 등도 대선 판도 변화에 따라 큰 변동폭을 보이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교집합 공약’ 관련 주식도 투자자들 사이 화제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정책 등이 그렇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여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공통 공약은 정책 지원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퍼져있다. ‘정책 테마주’가 떠오르는 이유다.

디에스티로봇은 지난 5일 1730원에서 하루만에 29.7%나 뛰어 2000원대를 돌파했다. 디에스티로봇은 로봇업체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해 주식 커뮤니티 사이에서 4차산업혁명 테마주로 알려진 바 있다. 

의료로봇 제조‧판매 업체인 큐렉소도 투자자들 사이에 4차산업혁명 테마주로 입소문을 타 지난 한 달에만 주가가 약 90%나 올랐다.

일자리 공약과 관련해선 사람인에이치알이 급등세다. 1만7000원대에서 보합세를 보이던 주식은 3월부터 서서히 치고 올라 21일엔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반면 후보들이 일제히 이동전화 통신비 인하 공약을 발표하면서 통신주는 내리막을 탔다. LG유플러스는 지난 11일 전장 대비 3.4% 내린 1만4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텔레콤과 KT도 각각 2.97%, 2.02%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150개 투기성 테마주에 금융당국도 ‘경계태세’

대선 테마주를 중심으로 소위 ‘작전세력’들의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금융당국도 단속을 위해 두 팔을 걷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검찰과 한국거래소와 함께 ‘시장질서확립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150개 종목을 정치테마주로 분류해 모니터링에 나섰다.

금감원은 모니터링 이후 지난달까지 589건의 불건전 주문 예방조치를 실시하고 사이버루머가 빈번히 발생하는 상장기업에 사이버알람을 90건 발동했다.

한국거래소도 지난 11일 급등하는 테마주를 집중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달 간 ‘상한가굳히기’가 19건으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상한가굳히기는 주식을 상한가로 밀어올린 후 개미들이 추격 매수해 주가가 오르면 팔아버리는 수법으로 자본시장법 상 불법 행위다.

지난 12일엔 증권선물위원회가 주식을 미리 매집하고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뒤 일괄 매도해 4900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긴(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투자자 2명을 적발해 수사당국에 통보 조치했다.

금융감독원 정치테마주 특별조사반은 11개 종목의 정치 테마주를 추가 조사하고 있어 작전세력의 주가조작이 여전히 성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기심리에 쏠린 개미들 “77만원씩 손해”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 간 정치테마주의 주가변동률은 89.3%로 같은 기간 평균 주가변동률인 3.7%에 비해 24배 넘게 큰 수치다. 직전 1개월 대비 평균거래량변동률도 708.3%로 평균치인 200.0%를 3.5배 가량 상회하고 있다.

또 해당 종목을 사고 파는 투자자의 98.2%는 개인투자자인 반면 기관과 외국인의 비중은 각각 0.4%, 1.5%에 불과하다.

거래소는 “심리대상기간 중 매매손실이 발생한 위탁자의 99.6%가 비전문가인 개인투자자로 계좌당 평균 손실금액은 약 77만원으로 분석된다”며 “(대선 기간을) 투자기회로 오인하지 말고 기업의 사업내용과 실적 등을 면밀히 분석한 후 투자종목을 선정해 매매할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종사자들도 개인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실적 뒷받침 없이 인맥만으로 급증한 정치 테마주를 추격 매수하는 건 ‘폭탄돌리기’를 하는 격이며, 대선 공약을 특정 기업과 묶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테마주를 둘러싼 매집‧매매는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여 금융당국과 검 ‧경찰의 선제적 단속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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