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단통법, 무용론 다시 고개들다

▲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삼성 갤럭시 S8 개통행사에서 개통을 희망하는 고객들이 시연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황금연휴 기간에 ‘갤럭시S8 대란’이 발생하면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일명 ‘단통법’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단통법의 도입 취지를 빗겨가는 보조금 대란이 일부 대리점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통법이 시행되고 지난 2년 7개월 동안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단말기 가격 하락 효과는 지지부진했고, 이번 갤럭시S8 대란 역시 그동안 제기됐던 단통법 무용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원금 상한제 폐지를 약속했던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단통법 폐지 시계가 좀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갤럭시 대란…‘12만명’ 번호이동

17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황금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의 번호이동 건수는 총 11만7636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만9539건으로 지난해 5월 1~7일 하루 평균 1만4536건보다 30%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 3일에는 번호이동이 2만8267건으로 집계되면서 시장 과열 기준인 2만4000건을 넘어섰다. 통신사별로 살펴보면 LG유플러스가 658명, KT는 246명이 순증가 했고 SK텔레콤은 904명의 가입자가 빠져나갔다.

이번 불법 보조금은 신도림과 강변 등 서울 시내 집단 상가뿐만 아니라 광주와 부산, 청주 등 전국 단위로 이뤄졌다. 방송통신위원회 단속을 피해 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매 정보를 알리고 특정 시간대에만 영업하는 ‘떳다방’식 영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환금연휴기간 이동통신사들은 가입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유통점에 주는 판매수수료(리베이트)를 올렸고 덩달아 유통점이 고객에게 주는 보조금까지 상승했다. 이 기간 갤럭시S8에 적용된 보조금이 1대당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6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일부 매장에서는 갤럭시S8의 실구매가가 10만원대 후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새벽에 판매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출시된 갤럭시S8의 출고 가격은 93만5000원이다. 출시된 지 2주 밖에 안 된 스마트폰이 10만원대로 가격이 폭삭 가라앉으면서 정해진 보조금만 받고 구매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출시하자마자 갤럭시S8 구입한 지모(30)씨는 “출시된 지 한 달도 안돼서 10만원으로 살 수 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며 “보조금 차별을 막겠다고 도입한 법(단통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조금 대란 소식을 뒤늦게 접한 강모씨(28)는 대란이 불거졌던 신도림 대리점 일대를 돌아봤지만 “이제는 그 가격으로는 어렵다”는 말을 들고 돌아가야만 했다.

◆ “보조금 차별은 계속”

단통법의 도입 취지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돌아갔던 보조금 차별을 막고 최종적으로 소비자들로 하여금 단말기 가격 부담을 줄이는 데 있었다. 단통법이 도입되기 전,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지역과 경로, 시점 등에 따라 보조금이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스팟’, ‘버스’ 등의 이름으로 불법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보를 알고 있는 일부 고객들에게만 과다한 보조금이 지급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국회에서 휴대전화 유통시장의 질서를 세우고자 지난 2013년 6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면서 지금의 단통법이 탄생했다. 2014년 5월 2일 국회를 통과하고 같은해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단통법에 따라 공시지원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리점의 구분 없이 30만원이 상한선이다. 공시지원금 외에 유통점이 고객에게 주는 추가 지원금은 공시지원금(30만원)의 15%를 넘을 수 없게 돼 있다. 이번 ‘갤럭시S8 대란’에서 갤럭시S8의 공시지원금이 최고 26만4000원이었던 만큼 합법적으로 줄 수 있었던 추가 지원금은 최대 3만9600원에 불과하다. 결국 단통법이 규정한 지원금의 10배가 넘는 금액이 지급된 셈이다.

단통법 도입 초기에는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불법보조금 행태가 다소 잦아들긴 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판매량과 번호 이동수는 단통법 이전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대형 상가와 온라인 판매점들을 중심으로 30~40만원대의 보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기 스마트폰이 새롭게 출시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같은 보조금 대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통사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이 있어도 한 업체가 리베이트를 올리면 가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다른 업체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주무부처인 방통위 마저도 업무 공백으로 시장이 더욱 혼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갤럭시S8 10만원대…또 ‘보조금 대란’
단통법 있어도 불법보조금 행태 만연
가입자 경쟁하는 이통사 막기 어려워
​“보조금 상한선 폐지가 전부 아니야”

◆ 끊임없이 제기된 단통법 무용론

때문에 매번 대란이 불거질 때면 단통법 무용론을 외치는 이유다. 단통법의 핵심 조항이라 할 수 있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3년 일몰제로 시행돼 오는 9월이면 폐지된다. 그러나 앞으로 통신사들이 자유롭게 단말기 지원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되더라도 시장경쟁에 따른 소비자 후생 증대의 여지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현행 상한선만큼 지원금을 싣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 5세대 이동통신 등에 투자해야 하는 통신사들이 지원금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불법 보조금 경쟁을 막을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사 중 한 곳이 불법 보조금을 뿌리면 경쟁사들도 대응하는 불법 보조금 경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단통법의 폐지 시기도 더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갤럭시S8 대란이 있기 전 문 당선인은 단통법의 핵심 조항인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문 당선인은 지난달 “이동통신 3사가 더 많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원금 상한제 폐지시기를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면 보조금 대란과 이용자 차별이 침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단통법 하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시장 감독 기관인 방통위의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공석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도 단통법 무용론이 불거지는 데 한몫했다는 평이다.

단통법상의 시행령 등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에는 단말기 지원금과 선택약정할인 비율이 연동돼 있어 통신사들이 보조금을 늘리는 데 부담이 있었다. 이를 개정해 통신사들이 약정할인 부담을 덜고 지원금을 올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가의 요금제를 사용하면 지원금을 많이 얹어 주는 ‘지원금 비례성 기준’을 삭제해 저가 요금제에도 지원금을 자유롭게 싣는 등의 방법도 있다. 결국 통신사들이 자율적으로 요금제 마케팅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단통법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들의 자유로운 마케팅을 유도할 수 있는 세부적인 규정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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