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컨트롤타워 강화… “자회사 독립성 저하·지배구조 혼란” 비판도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금융지주사들이 ‘매트릭스’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융합과 협업이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금융업에서도 하나의 컨트롤타워를 통해 계열사 업무를 총괄하는 매트릭스 조직이 화두로 떠올랐다.

매트릭스 조직이란 그룹 내 계열사 조직체계와는 별도로 계열사 공통사업을 부문별로 묶어 지주가 총괄하는 조직을 별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계열사별로 투자금융(IB)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는데, 각각의 세부 업무는 다르지만 큰 틀은 비슷한 만큼 이를 지주사 사업부문으로 묶는 것이다.

▲ 자료=한국금융연구원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IB부문과 글로벌 사업부문을 매트릭스 체제로 개편했다. IB부문은 기존 은행과 금투 중심의 기업투자금융(CIB) 사업부문을 그룹과 글로벌을 포함한 그룹·글로벌투자금융(GIB) 사업부문으로 확대 개편하고 지주사 예하 4개 계열사를 총괄하는 GIB사업부문장을 선임했다.

글로벌 영역도 마찬가지로 지주사 예하 4개 계열사를 총괄하는 사업부문장을 선임하고 계열사간 협업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도모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아시아 리딩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아시아 리딩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전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그룹의 역량이 총 결집된 ‘원(One)신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신한금융그룹의 상품과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KB금융지주는 지난해 말 금융그룹 시너지를 높이고 신성장, 핵심비즈니스 역량을 강화하고자 자산관리(WM)와 CIB부문에 각각 지주와 은행, 증권 3사 겸직 체제를 도입했다. 앞서 KB금융은 지난해 현대증권을 인수하면서 WM과 CIB를 묶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밖에도 올들어 하나금융지주와 KEB하나은행, NH농협금융지주 등이 IB사업단을 신설·개편하고 지주사 영향력을 강화하는 등 매트릭스 형태의 조직 개편을 진행한 상태다.

◆매트릭스 조직을 둘러싼 입장 충돌

▲ 사진=픽사베이

이처럼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최근 매트릭스 조직을 확대·신설하는 이유는 그 가시적 성과가 뛰어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은행 부문에서 실제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매트릭스 조직이 도입된 때는 2008년으로 하나금융지주가 처음이었다. 당시 하나금융은 전 계열사를 매트릭스 조직으로 재편해 개인금융과 기업금융, 자산관리, 코퍼레이트 센터(Corporate Center) 등 4개 비즈니스유닛(BU)를 구성했다. 각 BU장은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인사·예산권 등 사업부문에 대한 전권을 가졌다.

도입 이후 하나은행 수익성이 개선됐고, 특히 업계 하위 증권사였던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은 3년만에 전체 증권사 당기순이익을 10%넘게 상회하기도 했다. KB와 신한금융, 우리은행(당시 우리금융) 등 금융 지주사도 위원회를 도입하거나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부문을 잇는 형태의 부분적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했다.

2012년 은행과 증권사 WM사업부문을 통합한 신한은행은 이후 지난해 말까지 자산이 약 10조원 증가했다. 지난해 말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한 KB금융도 CIB부문에서 1분기 영업이익이 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142억원보다 3배나 상승했다.

정중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매트릭스 조직은 기존 법인 중심형 조직에 비해 조직 관리가 용이하고 효율적이며 그룹 차원의 시너지 창출 기회가 확대된다”며 “이를 통해 고객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업계 안팎으로 매트릭스 조직 체계의 지배구조 왜곡과 비효율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국회와 금융노조 등은 매트릭스 조직이 지주사와 자회사 간 역할 구분을 모호하게 해 지주사 최고경영자(CEO)에 과도하게 영향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매트릭스 조직이 금융사 전업주의 관행상 영업부문별 보고라인에 지휘 중복이 발생시키는 점과 회사 밖 사업 조직 간 수평적 교류에 익숙하지 않은 조직문화 탓에 의사결정에 혼선을 초래하는 점 등을 지적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도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은 은행의 비중이 매우 높아 매트릭스 제도의 효율성 및 시너지 효과를 얻기 힘든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트릭스 체계의 부작용으로 최종 책임자의 불분명성으로 인한 힘겨루기식의 조직 지배구조와 운영 혼란, 금융기관 종사자의 고용불안, 금융감독 위험 증가 등을 꼽았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의 법제도가 업권별 분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복합화를 통한 겸업화의 부작용이 그 효익보다 더 크다“며 ”매트릭스 조직은 자회사의 독립경영을 원칙을 무너뜨리고, 국내 금융산업의 업권별 법제와 규제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업계에서는 금융 환경 변화로 인해 비은행 계열사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매트릭스 조직은 고객 상품 개발이나 서비스 강화 등에 필수적이라 단순히 지배력 강화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지주사 관계자는 “최근 매트릭스 조직으로 협업이 강화되면서 비은행 분야 수익이 개선되는 상황”이라며 “매트릭스 체계 도입 초반에는 은행 비중이 커서 비효율적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비은행 분야가 강화되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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