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인류 역사에 자본주의가 생겨난 후부터 금융투기는 늘 인류와 함께 해왔다. 첫 금융투기라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부터 영국 주식회사 설립 열풍, 사우스시 컴퍼니 주식 파동, 19세기 유럽 이머징마켓 투기, 영국 철도버블, 20세기 미국 대공황, 일본 버블경제 등. 금융투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와 공존해왔다. 그리고 21세기의 첫머리를 당당하게 장식할 금융투기는 바로 가상화폐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가상화폐와 자주 비견되는 17세기 튤립 파동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상승세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가격 절정기였던 1637년 1월 투자 대상인 튤립 알뿌리는 개당 2500길더였다. 당시 2500길더면 네덜란드 근교의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하니 꽃 종자 가격이 가히 미친 듯 치솟은 것은 자명해 보인다. 튤립 파동 당시 투기꾼 가운데는 하루아침에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벌었다는 사람이 속출했다. 평민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은 새 마차와 말을 사들여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버블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달러 환율이 기존 242엔에서 124엔까지 떨어지면서 일본 정부는 정책금리를 5.0%에서 점진적으로 0% 수준까지 내렸다. 금리 하락에 따라 큰돈이 필요한 부동산이나 건설, 자동차, 전철, 부동산 등 내수업종이 움직였고, 이후 주식시장에 불이 붙자 개인투자자도 시장에 복귀했다. 1985년 말 1만3083포인트던 일본 닛케이 지수는 1989년 4만포인트를 돌파했다. 하지만 1990년 일본 정부가 자본시장 거품 해소를 명목으로 정책금리를 2%대로 올리면서 시장 버블이 붕괴되는 현상을 촉발했다. 그 이후 일본은 모두가 알다시피 ‘잃어버린 15년’을 겪어왔다.

물론 최근의 가상화폐 광풍은 튤립 파동이나 일본 경제버블과 결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라면 가상화폐가 현재까지 몰락에 가까운 가격 하락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 비트코인(Bitcoin)이 처음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1000여개의 가상화폐가 탄생했다. 그 사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리플 등 주요 가상화폐는 가격이 수십 배 올랐다가 급락하는 현상이 잦았다. 하지만 가격이 급락했다가도 시일이 지나면 귀신같이 평균 수준의 가격을 넘어섰다. 가상화폐의 ‘미래 가치’를 믿고 투자하거나, 일확천금을 좇아 투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금 유입이 지속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위험성은 여전하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Bithumb)에서 벌어진 서버 마비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12일 벌어진 이 사태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가진 위험성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가상화폐의 속성이 맞물려 수천 명의 피해자를 양산해냈다. 지난 6월 서버마비 이후 가격이 급락한 리플(Ripple) 사태와 유사하다. 비트코인 캐시(Bitcoin Cash)의 가격 하락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던 투자자들은 현재 빗썸을 상대로 단체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들은 리플사태의 결말처럼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사태의 이면에는 가상화폐가 현재 ‘법정화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가상화폐가 화폐가 아닌 상품이다 보니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통신판매업자’로 취급받고 있다. 당연히 가상화폐 거래소는 코스피나 코스닥 거래소보다 서버 규모나 보안 측면에 있어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가상화폐 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투자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향후 유사한 피해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상화폐가 가진 또 다른 문제는 그것이 발권 주체가 없고 수급이 완전 자유로운 화폐라는 점이다.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총량은 2100만비트(BIT)이며, 현재까지 1652만개비트가 채굴됐다. 그 가운데 대다수는 미국과 중국, 한국, 일본 등에 있는 전문 채굴세력에 의해 독점돼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비트코인이 기축통화로 거듭날 경우 생길 화폐 불균형 문제는 불보듯 뻔하다. 또한 만약 개별 국가들이 가상화폐를 만들어 수급할 경우 발권 주체가 분산된 민간 가상화폐와 충돌도 불가피하다. 현재 금융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이들 민간화폐에 기축통화 자리를 내줄 리가 만무하다.

가상화폐가 미래 실물화폐를 대체할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는 화폐 불균형을 감수하면서도 민간에서 만들어진 가상화폐에 그 지위를 내줄지 여부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실물화폐뿐만 아니라 신용카드도 사라지는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현재, 가상화폐의 결말은 생각보다 빠르게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행여 머지않은 미래 각국 정부가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체하는 현상이 보편화된다면, 투기세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간에 잔해처럼 남을 피해자는 개인투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오늘날 전세계적인 가상화폐 광풍은 금융투기사(史)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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