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결과 왜곡… 폐기·재조사해달라”… 보험연구원장 “확인 후 답변”

16일 오후 오세중 전국보험설계사 노동조합 위원장(좌측부터), 정기진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조직실장, 김호정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이동근 전국보험설계사 노동조합 부위원장 등 4명이 보험연구원의 설문조사 조작 의혹에 대해 항의 방문했다. 사진=이일호 기자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보험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보험설계사 노동3권, 산재보험 가입 관련 설문조사가 조작·왜곡 의혹을 받는 가운데,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 등 4명이 항의방문했다. 민주노총 측은 왜곡된 설문조사 자료가 언론·학술대회 등에 공공연히 쓰이고 있다며 설문조사 결과의 폐기와 재조사,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연구원 측은 “확인 후 답변하겠다”며 즉각 답변을 회피했다.

16일 오후 3시께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김호정 부위원장 등 4명은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 본사에 방문해 ‘보험연구원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입법에 대한 보험설계사 인식조사” 보고서의 문제점’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날 김 부위원장은 한기정 보험연구원장 등 연구원 관계자 4명이 배석한 자리에서 “(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 리서치 과정에 조작된 혐의를 확인했다. 조작의혹이 있는 설문조사 자료를 즉시 폐기하고 설문조사 조작 관련 진상조사 및 관련자 처벌을 요구한다”며 관련 요구서를 전달했다.

앞선 10월 30일 연구원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입법에 대한 보험설계사 인식조사’ 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보험설계사 대다수가 개인사업자를 선호하고, 노조 설립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산재보험보다는 단체보험을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담겨있다.

하지만 해당 설문조사는 왜곡 의혹을 받고 있다. 설문조사 대상이 생보사 전속설계사로 한정됐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설문 명단이 유출돼 표본의 공정성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질문지는 실제와는 다른 내용이 들어가 특정 답변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기정 보험연구원장은 “신뢰할 수 없는 자료는 폐기돼야 마땅하다. 우리가 알아보고 말씀을 드리겠다”며 즉각 답변을 피했다. 민주노총 측은 오는 20일까지 답변을 요구했다.

◆보험연구원 설문조사, 3가지 문제점

보험연구원 정원석 연구위원과 박정희 선임연구원이 실시한 해당 설문조사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해당 설문조사는 표본, 즉 설문조사 대상이 이 8개 대형 생명보험사의 전속설계사에 국한됐다. 생보사가 제공하는 단체보험에 가입한 비율이 95.6%나 되는 생보사 전속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산재보험 가입 선호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반면 법인영업점(GA) 소속 보험설계사나 손해보험사 소속 보험설계사들의 보험가입률이 매우 낮다. 지난 7월 기준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미가입율은 90.6%다. 전체 보험설계사 중 29만명에 달하는 GA 보험설계사와 손보 보험설계사 중 상당수는 단체보험과 산재보험 중 여느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오세중 전국 보험설계사 노동조합 위원장의 설명이다. 만약 이들을 모두 포함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경우 산재보험 선호도에 대한 설문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연구원 설문조사의 질문지 중 ‘산재보험과 단체보험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는 항목에 보험설계사들 가운데 85.7%가 보험사의 단체보험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지난해 8월 한국노동연구원이 실시한 보험설계사 등 특수직 조사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중 74.6%가 국가 주도의 고용보험 가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조사의 편차가 이처럼 큰 것은 연구원이 조사 결과를 보험설계사들의 일반적 입장으로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본 선정을 지엽적으로 했음을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연구원 측은 “설문조사 대상 선정 단계에서 생·손보사 모두 명단 협조를 요구했는데 이에 응한 쪽이 생보사 측이라 그렇게 했다”며 “손보사 측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라 부득이하게 생보사 설계사만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설문조사 질문지 상 내용이 사실과 달라 응답자들에게 특정 답변을 유도하는 부분 또한 문제다. 해당 질문지는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 선호 여부에 대한 질문으로, 연구원은 질문 내용에 ‘현재 설계사는 사업자로서 소득에 대해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으나,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해당 질문의 의도는 2013년에 진행한 유사 설문조사를 보면 더 명확히 드러난다. 2013년 설문조사에는 ‘보험설계사들이 법적 근로자로 전환할 경우, 귀하의 고정급에 대해서는 기존 사업소득세보다 높은 세율에 해당하는 근로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명시해놨다.

하지만 이는 틀린 사실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보험설계사는 사업소득세로 수익의 3.3%를 원천징수하고, 연말정산과 종합소득 신고시 기본세율(6%~40%)을 적용받는다. 개인사업자나 근로자나 버는 만큼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이 인정될 경우 최대 40%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하지만 개인사업자로 될 경우 3.3%의 원천징수분만 내면 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연구원도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악용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보험연구원 2017년 설문조사(윗쪽)과 2013년 설문조사 내용. 사진=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오세중 위원장에 따르면 해당 설문조사는 사전에 조사대상 설계사들 명단이 보험사들에게 전달됐다. 이를 바탕으로 A생명보험사는 설문 대상자들을 모아 ‘산재보험 보다 회사 단체보험이 좋다’거나 ‘근로자성 지위가 인정될 경우 세금 부담이 급증하고 각종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식의 교육을 했다.

오 위원장은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조사와 연구원 설문조사 간에 결과 차이가 있어 의심을 하던 차에 관련 제보가 접수됐다. 녹취는 물론 A보험사의 설문조사 사전 교육사진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연구원에 문의해보니 ‘(명단에 대해서는) 리서치 단체에서 조사를 했고 자기들은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리서치 단체인 서울마케팅리서치는 측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으로부터 2700여명의 설문조사 명단을 받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리서치 업체 측의 말이 사실이라면 연구원 측은 사전에 설문조사 명단을 받아 조사대상 보험사 측에 전달했고, 보험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표본으로 선정된 설계사들을 따로 모아 사전교육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에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보험설계사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 또한 위의 내용들과 유사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해당 설문자료는 보험연구원이라는 공신력을 바탕으로 각종 언론과 학술대회, 토론회 등에 자주 쓰여왔다. 지난 10월 발표된 설문조사도 주요 언론에 의해 보도됐으며, 지난 15일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 한국보험법학회 주관으로 열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합리적 보호방안 대토론회’에 참여한 연사 발표의 주요 근거자료로 활용됐다.

◆“왜곡된 설문조사”… 생명보험협회 작품?

일각에선 이 같은 설문조사가 생명보험협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설문조사일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연구원 재원을 보험사들로부터 출연 받기 때문에 보험업계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않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조재린 보험연구원 연구조정실 실장은 “설문조사 과정에서 협력이 필요해서 생보협회에 요청한 것이 사실이다. 생보협회 진행사안을 우리가 한 것”이라고 밝혔다. 생명보험협회는 생보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집단으로,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힘썼을 정황 또한 의심해볼만한 상황이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연구원의 보험설계사 관련 설문조사는 보험업계에 설계사 노동권 강화나 4대 보험 가입 등을 반대하는 주요 자료로서 쓰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연구원 측은 “재정을 보험사로부터 지원받긴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감사를 받기 때문에 외압은 없다”며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김 부위원장 측은 “고용노동부에 ‘왜곡 우려가 있는 해당 설문조사를 근거자료로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한 상태”라며 “보험연구원에서도 진상조사를 해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체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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