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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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몇몇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 참모로서는 해서는 안 될 ‘공갈’ 혹은 ‘협박’을 했다는 비판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나도 정보사령부 출신이다. 80년대에 한 경제신문 기자가 정보사 요원들로부터 회칼 테러를 당한 일이 있다”

황상무 대통령실 수석. 지금은 고인이 된 오홍근 전 중앙경제 기자 피습 사건을 거론하면서 기자들에게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당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식사 자리에는 ‘윤석열 정부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는 MBC 기자가 있었다고 한다. 황 수석이 하고자 했던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MBC 너희들 똑바로 해. 회칼 테러 알지?” 설마 이런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기자 출신이다. 이 일로 그는 ‘회칼 수석’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얘기하며 “계속 해산시켜도 하룻밤 사이에 4~5번이나 다시 뭉쳤는데 훈련받은 누군가 있지 않고서야 일반 시민이 그렇게 조직될 수 없다”고 배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의식 수준에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설화’라는 말이 있다. 한글로 그냥 쓰면 여러 뜻이 떠오른다. 우선 ‘눈꽃’이 생각되고 옛이야기나 전설 등도 연상된다. 문제는 세 치 혀 때문에 발생하는 설화(舌禍)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선조들도 설화를 경계했다. ​조선조에 편집된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이 명구를 전한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말을까 하노라”

지난해 수해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던 때다. 충북도지사는 “내가 사고 현장에 먼저 갔어도 바뀔 것은 없었다”고 했다.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대구시장은 “휴일인 주말에 골프 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 맞는 말일 지도 모른다. 각자 직분과 소임이 있으니. 현충일에는 온 국민이 곡(哭)을 하고 있어야 하냐는 말과 비슷하다. 그런데 말이 네 가지지’가 없다. 듣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든 말이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표현의 방식이 문제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말을 한번 만들어 보자.

“말은 만복(萬福)의 아버지요 만화(萬禍)의 어머니다.” 언행을 조심하라는 하나의 경구가 될 만하다.

국민의힘 공관위는 지난 16일 SNS 발언으로 막말 논란을 낳은 장예찬 부산 수영구 후보의 공천을 취소했다. 장 후보는 “난교를 즐겨도 맡은 직무에서 전문성과 책임성을 보이면 존경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부적절한 글을 SNS에 올려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에도 장 후보는 “서울 시민이 일본인 발톱의 때만큼도 못하다”는 취지로 쓴 과거 글이 추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공천이 취소된 뒤 자신은 윤석열 대통령의 제1호 청년 참모라면서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젊은 나이엔 일반적으로 정의로움에 목말라하는 게 인간의 특성이다. 아전인수나 견강부회, 번지르르한 말재간 하나로 대통령의 제1호 참모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대통령을 들먹이는 건 그 자체로 대통령 얼굴에 분칠(糞漆)을 하는 짓이다.

민주당에서는 정봉주 후보가 2017년 “발목 지뢰 밟는 사람에게 목발 하나씩을 경품으로 주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조수연 후보는 2017년 SNS에 “백성들은 조선왕조보다 일제 강점기 지배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막말의 불씨는 언제 어디서 타오를지 모른다. 총선일이 가까워지면서 여야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정치인들은 특히 평소에 말버릇을 정돈할 줄 아는 수신(修身)의 길을 걸어야 한다. 모나지 않은 언어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을 쏟아 냄으로써 억하심정이나 강박관념을 해소하는 소위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된다. 카타르시스라는 게 무엇이던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비극이 관객에 미치는 중요 작용의 하나로 든 것이다.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이다. 연극에서 배우가 관객을 감동시켜 정신의 안정을 찾아 주는 심리 요법으로 많이 이용됐다. 정치권 인사들이 본인 스스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거친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상대에게 표출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더 들어 보자. “건방진 놈”, “물병을 머리에 던져 버리고 싶다”, “단언컨대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XX들”, 품격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정적들에게 좋지 않은 말들을 간혹 했다. 그런데 그가 한 말들은 요즘 정치인들의 언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박정희 그놈 참 나쁜 놈이데이”, “김대중 그놈 참 많이 먹는데이” 욕이라고 하기엔 애교가 넘친다. 그렇게 악의(惡意)가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그의 말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성정이 남달리 좋아서가 아닐 것이다. 그는 집 안 거실에 걸어놓고 항상 큰 뜻을 가다듬었다는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대도무문’(大道無門)의 현액이 일깨워 준 관대함이 몸에 뱄던 정치인이었다.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이 대중연설을 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적어 온 것을 읽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조그만 어휘 하나가 뜻하지 않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 포스트에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책임감의 발로라고도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청중들이 있거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 ‘애드리브’(ad lib)으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원고가 아니면 메모라도 들고 그것을 읽었다. 의외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폼은 안 나겠지만 후과(後果)가 생기지는 않는 자기관리다.

서로를 견제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정치판에서는 덕담 수준의 인사치레도 시빗거리가 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구설수가 바로 그런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남 해남·완도·진도 지역구 공천을 받은 박 후보는 지난 18일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함께 출연한 <시사인> 유튜브 방송 내용이 문제가 됐다. 발단은 조국혁신당 대표가 “저희랑 정세 인식이 똑같아서 나중에 명예 당원으로 모셔야겠다”고 하자 웃으며 “이중 당적은 안 되니까 명예당원은 좋다”고 화답했다. 누가 들어도 상대에 대한 인사치레로 한 덕담이었다. 조국혁신당은 또 민주당의 우당이 아니던가.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후보라면 당연히 명예당원을 하더라도 더불어민주연합 명예당원을 해야 한다”고 못마땅한 속내를 드러냈고, 정청래 최고위원도 “당 지도부 일원으로서 심각한 사안으로 최고위원회의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은 뼛속까지 민주당원이라는 박 후보의 사과 끝에 시비는 일단락됐지만 이번 일은 애초에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정말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였다.

전라남도 완도 여행하다 보면 배꼽 잡게 만드는 간판 하나를 보게 된다. 업소 주인의 재치가, 그의 코미디언 같은 발랄함이 그대로 느껴져 웃음이 절로 나오게 된다.

<완도네시아>!

같은 섬이라는 것, 같은 관광지라는 것에 착안했을까? 뭘 하는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보면 좋아할 것 같다. 우리의 말은 음절이 나뉘는 소리로 구성돼서 여러 새로운 용어를 만들기가 쉽다. 조어(造語)의 편의성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회칼 수석’도 그렇지만 기가 막힌 단어가 새로 만들어졌다. ‘도주대사’. ‘호주(濠洲)대사’를 ‘도주(逃走)대사’로 바꾼 것이다. 야든 여든 이 정도면 조어의 챔피언급이다.

22대 총선 투표일이 턱 밑으로 다가왔다. 선수는 후반전에 뛴다는 말이 있지만, 정치인은 후반전을 조심해야 한다. 수도권 등 여러 곳에서 눈 터지는 계가(計家)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서 자칫 작은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건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이 된다. 정치란 무엇인가. 바로 ‘말의 예술(藝術)’이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다들 말조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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