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적용대상 벗어나기 위해 아예 문 닫는 기업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대책마련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가운데 언론·방송 채널을 보유한 일부 기업들이 속속 폐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영란법상 언론사로 적용되면 여러가지 사업에서 불이익을 볼게 뻔하기 때문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이른바 김영란법은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에 따라 관련 후속 작업을 거쳐 오는 9월 28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영란법 관련 기관들은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직원 교육에 나섰고, 고급 음식점마다 3만원짜리 메뉴 내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부정청탁금지법에 대해 내수위축 가능성을 비롯해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법의 기본, 근본 정신은 단단하게 지켜나가면서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금 정부에 주어진 중요한 책무”라고 밝혔다.

◆일반기업 직원, “어느새 내가 기자였지?” 반문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으로 이들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 또는 상당의 서비스를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벌 조치된다.

김영란법에서는 언론중재법 2조 12호에 따른 언론사를 공공기관에 포함하고 있다. 언론사에는 방송사업자·신문사업자·잡지 등 정기간행물 사업자·뉴스통신사업자과 인터넷신문사가 해당된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한 재벌그룹의 지주사인 A사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 폐업 신청을 냈다. A사는 방송채널의 지분을 일부 보유, 김영란법상 언론사다.

법 규정 모호, 내부적 가이드라인 마련에 고충
종이사보는 규제, 전자·비등록 사보는 미규제

특히 사업자가 A사로 돼 있어 해당 회사 임직원들은 모두 언론사 임직원으로 분류된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방송채널 지분을 보유한 A사의 한 계열사도 폐업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내 방송채널을 보유한 B사도 최근 문체부에 폐업을 신청했다. B사 관계자는 “홍보팀 상무와 부장 2명이 포함된 별도의 법인이 방송채널을 운영해 와 위험부담은 비교적 적었지만 원천 차단을 위해 폐업을 택했다”며 “사내 방송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대기업 C사도 최근 문체부에 폐업을 신청했다. C사 홍보팀 한 직원은 “(김영란법상에) 직원들 대부분이 언론사 임직원으로 분류돼 왔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요기업 관련계열사 잇딴 '폐업' 돌입

최근 삼성, 한화, 삼양 등 10곳이 넘는 대기업이 잇따라 종이 사보를 폐간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도 일단 소나기를 피하자는 포석에서다. 각 기업들은 ‘사보 폐간’에 대해 김영란 법과 무관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기업 사보까지 언론매체로 분류하는 것에 불만이 파다하다.

김영란법에서 말하는 언론사 기준에 따르면 현재 주요 기업들이 발생하고 있는 사보를 비롯해 각종 단체들의 협회보도 언론사로 간주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법 적용을 받는 언론사는 방송 345곳, 신문 3221곳, 정기간행물 7098곳(잡지 4893곳, 기타간행물 2259곳) 등이다.

정기간행물 중 대부분이 기업이 발행하는 사보다. 사보를 만드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협회장은 물론이고 사보를 만드는 부서 직원과 관련 결제 라인에 해당하는 직원까지 언론사 ‘임직원’으로 간주돼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 같은 회사 직원이라도 사보를 만드는 직원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고, 다른 부서 직원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종이사보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해당되지만 전자사보나 비등록 사보는 제외된다는 점이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은 지난 16일자(73호)를 마지막으로 온라인사보 삼성앤유 발행을 중단했다. 삼성앤유 웹사이트도 문을 닫는다. 삼성그룹은 삼성앤유 구독자에게 발행종료를 알리는 문자를 발송했다.

삼성그룹은 이미 발행된 삼성앤유의 PDF 내려받기 서비스는 그룹 홈페이지로 이관하고 그룹 블로그와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사보 콘텐츠를 선보이기로 했다.

삼성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제일기획도 9월부터 종이사보 ‘제일’ 발행을 종료하고 온라인으로 사보를 제공키로 했다.

한화그룹은 7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보인 ‘한화·한화인’ 발행을 중단하고 사보와 사내방송을 하나로 통합한 채널H를 개통했다.

삼양사는 40여년을 발행해왔던 사보 ‘우리함께’를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디지털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룹과 계열사에서 각각 정기간행물 사보를 발행 중인 현대차그룹과 ‘사보SK’를 41년째 발행 중인 SK, 기내에 ‘모닝캄’이라는 이름의 정보지를 제공 중인 대한항공 등은 간행 방식 변경을 검토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폐업도 못하는 방송사업자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자(IPTV), 위성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방송채널사용사업자 등 방송사업자로 분류되는 기업들은 아예 전체 기업 문을 닫지 않는 이상, 김영란법을 피해갈 방법이 없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 기업들은 김영란법 시행에 앞서 직원들이 법 위반을 하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서고 있다.

폐업도 못하는 방송사업자, 직원 교육에 집중
시행 한달 남았는데 적용대상 ‘아직 혼선’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인 GS홈쇼핑과 CJ오쇼핑, 현대홈쇼핑 등 주요 홈쇼핑 회사들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IPTV인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CJ헬로비전, 티브로드, 현대HNC 등에 소속된 임직원들도 모두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되면서 관련 설명회 등을 통해 향후 적용 사례 등을 살펴보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밖에 재능교육, 대교 등 교육 관련 회사와 금영 등 노래방 관련 회사도 방송채널사업자에 포함되며, 선교 관련 교단체로 방송채널을 운영, 방송사업자에 해당한다.

이들 회사 직원 가운데는 자신이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가 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관계자는 “직원들이 대상이 되는지 여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법안을 공포하고 시행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해 선의의 일반국민까지도 피해를 입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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