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없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원전(왼쪽부터 4호기, 3호기, 2호기, 1호기) 전경. 사진=곽진산 기자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2016년 3월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주시 양북면 불국로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수원은 경주시와 동반성장을 위한 5대 프로젝트와 10대 사업을 발표했고, 경주시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물론 거저는 아니었다. 앞서 경주시는 대가로 핵폐기물을 처분하는 ‘방폐장’을 받았다. 경주에는 현재 월성원전 1~4호기와 신월성원전 1~2호기를 합쳐 총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며, 중‧저준위 방폐장과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건식저장고도 들어서 있다. 핵폐기물을 관리를 위해 한국원자력환경공단도 위치하고 있다. 경주시는 원자력발전소-폐기물처리장-처리관리시설 즉, ‘원자력 종합세트’가 자리한 유일한 곳이다.

대규모 핵발전단지가 있는 다른 세 지역과 달리 경주시에 원전관련 시설이 몰빵(?)된 것은 시민들의 합의라는 명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 2일 실시된 4개 시‧군(경북 경주‧영덕‧포항‧전북 군산)의 방폐장 부지 선정 주민투표에서 경주는 찬성률 89.5%로 다른 세 지역을 근소한 차이로 제쳤다. 경주시의 탈핵(脫核) 운동이 타 지역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원전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 중에는 당시 주민투표에 찬성한 사람은 없었다. 방폐장 근처에 거주하는 50대 이모씨는 “대부분 도시 사람들이 찬성을 했지. 여기는 아마 찬성한 사람은 없을 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원전 근처에 안 살아도 지원금 받을 거 받을 수 있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사실상 한수원이 지배하는 원전부근 마을

“한수원 아우라.”

이주대책위원회를 3년째 이끌고 있는 신용화 사무국장은 지난 8월 22일 <파이낸셜투데이> 취재진과 만나며 경주 양북면 방폐장 인접 마을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상 마을을 주무르고 있는 게 한수원이라는 의미다. 그는 “농사짓고 고기 잡던 분들이 원전 때문에 바다를 뺏겼다. (원전)건설이 다 끝나고 나선 여기엔 일자리도 없다”며 “관광객들도 오지 않는데, 월세방 임대사업도 다 소용없어졌다”고 말했다.

방사능은 차치하더라도 마을은 이미 ‘피폭’된 것처럼 분열돼 있었다. 이주대책위 천막 뒤편에 위치한 먹거리 골목 주민들은 원전 중단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였다. 생계유지를 위해 한수원과의 관계가 중요해진 마을 주민들에게 탈핵은커녕 안전마저 뒷전이었다.

양북면 나아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한수원 직원들이 간간이 오는 정도지만, 그나마도 없으면 여기는 장사 못한다”며 “주변 보면 아시겠지만, 관광객들도 없다. 여기는 해가 지면 다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성은 잘 모르겠다. 한수원 직원들은 안전하니까 걱정 말라고 한다. 당장 생계가 중요한데, 탈핵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고 언성을 높였다.

원전 중단 두고 찬반으로 나뉜 마을
음식점은 고사하고 숙박시설도 변변찮아

오후 1시쯤. 점심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시간이었지만, 먹자골목은 한산했다. 몇몇 가게에 허름하게 남겨진 간판만이 이곳이 음식점이었음을 알려줬다. 가게 불이 켜진 곳도 자리를 비운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관광객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국밥집을 운영하는 송씨는 “잘 안 온다”며 짧게 답했다. 그는 “원전 이야기는 하지도 말아라. 그거 중단해 버리면 우리는 뭐 먹고 살겠냐”며 손사래를 쳤다. 생계가 급급한 이들에게 ‘탈핵’은 배부른 소리였다.

이런 이유로 경주 지역에서 탈핵 운동은 극명하게 대립한다. 한수원은 마을 주민들의 생계유지 역할을 자처했고, 이주대책위의 요구사항에 대해선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전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 자리한 봉길리 봉길대왕암해변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곳이지만 제대로 된 음식점은 고사하고 숙박시설도 변변찮다. 주변 횟집은 지도에만 존재하고 횟감이 가득해야 할 수족관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심지어 일부 가게는 ‘무당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상 상권이 파괴된 것이다.

대왕암해변 부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서모씨는 “지진이 있고 나서는 관광객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한수원 직원들 없으면 하루 10만원도 벌기 어렵다”며 “숙박시설도 허름하고 음식점도 딱히 없어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외면한다”고 씁쓸해 했다. 하염없이 대왕암해변을 바라보던 이정봉 어르신은 “나 어렸을 때는 여기에 사람들이 꽉 찼다. 지금은 저거(문무대왕릉)나 잠깐 보고 가는 사람들 말고는 없다”며 과거 동네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은 뒤 옛 추억에 잠겼다. “해수욕장 참 아름답지….”

지난 22일 방문한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 봉길대왕암해변 부근에 있는 한 횟집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사진=곽진산 기자

주민들 소변에서 삼중수소 검출

봉길리와 나아리 마을 사이에 떡하니 자리한 월성원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수로가 운영된다. 감속재로 사용되는 물이 경수로보다 중성자가 하나 더 있어 중(重)수로 불린다. 문제는 중수로가 경수로에 비해 삼중수소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2014년 한수원이 정수성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원전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보고서를 보면 2008년부터 누적된 월성원전 기체폐기물의 삼중수소 농도는 1345.9TBq(테라베크렐)로 한울원전 64.81TBq보다 21배 높았다. 당시 정 의원은 “삼중수소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월성원전만 방사선 제거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아리 모든 주민에게서 삼중수소 검출
한수원 “배출량 기준치 미달, 문제 없다”

월성원전 부근 주민들은 현재 삼중수소를 떠안고 살고 있다. 2015년 11월 나아리 주민 40여명을 대상으로 소변을 조사한 결과 모든 주민의 소변에서 1리터 당 최소 4.0Bq(베크렐)에서 최대 157Bq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당시 5살 아이에게서도 17.5Bq의 삼중수소가 나왔다는 소식에 마을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현재 한수원은 삼중수소 배출량이 기준치 미달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지진 사건 이후로 마을 이미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제값은 고사하고 봉길리‧나아리 마을의 부동산 거래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다. 황분희 이주대책위원회 부회장은 “우리가 죽고나면 이제 마을은 끝이다. 집은 내놔도 사지를 않아 나갈 수도 없다”면서 “원전 인근의 집을 누가 사겠냐”고 토로했다.

‘보상금’으로 펜션 매입하기도

‘보상금 장사’라는 외부 시선에 주민들은 억울해 했다. 마을주민 최모씨는 “원전이 들어오면 우리에게 큰돈이 들어오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아니다. 한수원이 줬다는 보상금 자체를 우리는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껏해야 해수탕과 운동시설이 눈에 보이는 건물이고, 그마저도 2000원 할인되는 것이 우리가 받는 혜택의 전부다”고 전했다.

한수원은 대외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받은 게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보상금이 마을 주민들에게 각각 배분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을 전체 사업비 명목으로만 추진되기 때문이다. 마을대표 운영기관을 통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야만 보상금이 집행되는 구조다. 시설보수, 인프라 구축 등으로만 사용되다 보니까 마을 주민들에게 피부로 체감되는 보상은 없는 실정이다. 이주를 원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지원에 대해 한수원 측은 “법 개정이 아니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러한 보상금 운영체계는 부작용을 발생시켰다. 실제로 감포읍발전협의회의 경우 한수원에게서 지급받은 월성원전 1호기 연장운영에 대한 보상금 225억원을 인근 원룸 2동과, 노래방 건물, 펜션 부지 등 부동산 매입에 사용해 논란을 빚었다. 발전협의회가 마을 보상금 사용을 대표하는 기구가 되면서 마을 주민을 위한 사업보다는 보상금 사용에만 혈안이 된 것이다. 신용화 사무국장은 “농사나 짓던 마을 주민들이 그 지원금가지고 무슨 사업을 하겠냐”면서 “지원금이 잘못된 사업 정책으로 이어져서 지원금이 그냥 증발해 버린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중저준위 방폐장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폐기물 모형. 사진=곽진산 기자

적어도 2053년까지 고준위 폐기물과 동거해야

국내에는 아직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시설이 없다. 중‧저준위 폐기물과 달리 고준위 폐기물 처리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보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을 두고 잡음이 많고, 시설 구축 또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탈핵’이 실제로 진행되더라도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에게는 당장의 실질적 효과는 없다. 이 과정에서 경주시가 건식저장고에 보관하던 고준위 폐기물의 이전 효율성을 이유로 고준위 방폐장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시에 고준위 방폐장 유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확정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안’을 통해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시점을 2028년, 고준위 방폐장 운영 시점을 2053년으로 정했다. 봉길리와 나아리 주민들은 적어도 2053년까지 고준위 폐기물과의 동거를 계속해야만 한다.

보상금 지급됐지만 실질적 혜택 없어
노래방, 원룸, 펜션 매입 등 부작용도

마을주민들과의 합의절차도 마련된 것이 없다. 중‧저준위 방폐장의 추가 건설 계획도 한수원의 일방적인 방식을 통해 진행된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주장이다. 신 사무국장은 “명목상 공청회가 있지만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했을 때 충분히 설명하거나 시정하지 않는다. 브리핑하고 답변 없는 질문만 받는 게 전부”라며 “주민들에게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어떻게 믿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한수원은 2024년이면 가득 찰 건식저장고의 확장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봉길리, 나아리 마을은 굉장히 경치가 좋은 지역입니다. 울산, 포항도 가깝죠. 만약 원전이 없었다면 훌륭한 관광지가 되지 않았을까요?”라며 신 사무국장이 물었다. “발전소가 보이는데 어떻게 식사하고 싶겠어요.” 경주 봉길리와 나아리의 파괴는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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