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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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축신’의 라리가 데뷔골이 나오다

1987년생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는 FC바르셀로나 유스팀을 거쳐 2004년부터 1군팀에서 뛰었습니다. 데뷔전은 2004년 10월 16일 RCD 에스파뇰과 경기로 당시 나이는 17세였죠. 그의 프로 첫 데뷔골은 2005년 5월 1일 알바세테와 경기였습니다. 이날의 데뷔골로 메시는 라리가 최연소 득점자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메시는 2021년 8월 프랑스 파리 생제르망 FC로 이적하기 전까지 FC바르셀로나의 8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챔스 우승, 2번의 트레블, 최초의 6관왕이라는 어마어마한 업적의 주축으로 맹활약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7번의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조국 아르헨티나 우승을 이끈 메시는 국가대표팀에서는 우승과 쉽게 인연을 맺지 못습니다. 그러나 ‘축신’의 근성은 결국 빛을 발했습니다. 2007년부터 참가한 코파아메리카에서 5전6기 끝에 2021년 대회에서 우승과 최우수상, 득점왕 등 3관왕을 거머쥔 것이죠.

하늘은 이 축신에게 월드컵 우승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 첫 출전했던 메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깝게 준우승을 차지했고 다음 대회인 러시아월드컵에서도 16강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결승에서 멋있게 ‘라스트댄스’를 추며 대회 2연패에 도전했던 프랑스를 물리치고 조국에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대회 득점왕과 더불어 실버부트까지 수상하며 겹경사를 누렸습니다.

올해 한국나이로 37살인 메시의 활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소속팀에서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있으며 내친김에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출전도 염두해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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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두 개의 심장, 박지성의 인생경기가 펼쳐지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국가대표팀의 애제자였던 박지성 전북현대 테크니컬 디렉터의 인생경기도 18년전 5월에 진행됐습니다.

박지성은 2002년 12월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의 조건에 PSV 에인트호번과 입단계약을 체결하고 2003년 1월 12일 입단했습니다.

첫 시즌은 적응의 어려움을 겪으며 홈팬들의 야유를 들었고 히딩크 감독은 그를 원정경기에만 출전시키는 등 혹독한 시즌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그는 점점 기량이 올라왔고 팀의 주축 멤버로 발돋움했습니다. 박지성은 5월 4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AC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홈 2차전 전반 9분 순간적인 돌파로 선제골을 터뜨림으로써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최초로 골을 터뜨린 한국 선수가 됐습니다.

박지성의 벼락같은 슛팅은 AC밀란의 디다 골키퍼가 손쓸 틈도 없이 골문 상단을 찢을 듯이 때렸습니다. 이후 팀 동료였던 이영표의 도움으로 필립 코쿠가 두 번째 골까지 터뜨려 2대0으로 앞서갔습니다. 하지만 후반 막판 AC밀란에 결국 실점을 허용하였고 PSV가 재차 추가골을 터트렸지만 결국 원정 다득점으로 아쉽게 패하며 결승행 티켓은 AC밀란에게 돌아갔습니다.

아인트호벤은 결승 문턱을 넘지 못해 분루를 삼켰지만 박지성은 이 경기로 유럽의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날의 활약으로 박지성은 당시 세계적인 구단이었던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됩니다.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체스터 유니이티드 감독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입단제의를 한 일화는 유명하죠. 이후 박지성은 2005년 여름, 맨유로 이적했으며 7년간 통산 204경기 28골 29도움, UCL 1회 우승, EPL 4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박지성은 국가대표에서도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첫 출전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4강 신화의 주역이 됐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아쉽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뜨렸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하며 3개 대회 연속 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현재까지 월드컵 3개 대회 연속은 박지성이 유일합니다.(2개 대회 연속 득점자는 故유상철, 안정환, 손흥민입니다)

이후 박지성은 잉글랜드 퀸즈파크 레인저스, PSV아인트호벤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현재 박지성은 K리그1 전북현대모터스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를 역임하며 지난해 12월 31일 첼시 FC의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를 전북 현대의 기술 고문으로 선임하는데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사진=FC서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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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축구 천재 박주영의 리그 첫 헤트트릭

박주영은 축구천재라 불리며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선수였습니다. 1985년생인 박주영은 2005년 서울에 입단해 K리그에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데뷔 시즌 신인왕까지 거머쥐었습니다.

박주영이 유명해진 계기는 2004년 2004년 U-19 AFC 청소년 대회입니다. 박주영은 조별리그에서 3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고 라이벌 일본전에서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백미는 중국과의 결승전. 당시 박주영은 2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중국의 수비수 3~4명을 잇따라 허수아비로 만들며 득점을 기록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한 박주영은 당해 5월 18일 광주를 상대로 프로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박주영은 전반 14분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득점했습니다. 이어 전반 44분과 후반 35분 골을 터트리며 관중들을 열광시켰죠. 이후 박주영은 2달 후인 7월 10일 포항전과의 경기에서도 해트트릭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박주영은 2008년 해외로 진출해 AS모나코(프랑스), 아스널(잉글랜드), 셀타 비고(스페인) 등 유럽 빅리그 무대를 경험한 후 2015년 서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2016년 전북 현대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K리그 우승컵을 안기고 2022년 울산현대로 이적한 이후 올해부터는 플레잉코치로 활약 중입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06년 독일월드컵때는 부진했으나 2010년 남아공월드컵 3차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그림같은 역전 프리킥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16강에 공헌했습니다.

아울러 2012 런던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전반전에 현란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며 선제 결승골을 기록했습니다. 박주영의 활약으로 한국은 올림픽 축구 역사상 최초로 동메들을 획득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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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대성불패’ 구대성이 랜디존슨을 울리다.

한화이글스 출신 좌완 투수이자 역대 마무리 투수 중 유일한 최우수상 수상자인 구대성은 짧지만 임팩트 있는 2005년을 보냈습니다.

구대성은 한화이글스와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팔로스)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5년 35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메츠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역사적인 경기는 5월 22일 메츠의 홈구장 셰이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의 홈경기였습니다. 2-0으로 앞선 7회초 무사 1루서 선발 크리스 벤슨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구대성은 8회 1사까지 삼진 3개를 잡아내는 등 상대 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먹으며 홀드를 기록했습니다.

백미는 타석에서 펼쳐졌습니다. 7회말 선두타자로 들어선 구대성은 양키스 선발 랜디 존슨을 상대로 3구째 한복판 낮은 코스로 날아드는 직구를 잡아당겨 중견수 키를 넘는 2루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어 호세 레이예스의 포수 앞 희생번트로 3루까지 나아간 구대성은 포수 호르헤 포사다가 홈플레이트를 비운 사이 홈으로 질주했습니다. 1루수가 급하게 포사다에게 송구했지만 구대성은 포사다의 미트를 살짝 피해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찍으며 득점했습니다.

당시 상대 투수가 ‘사이영상 5회 수상자’에 빛나는 랜디 존슨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2루타에 타점까지 올린 것은 그야말로 대형사고였죠.

다만 이때 슬라이딩 과정에서 어깨 부상을 입은 구대성은 33경기 6홀드 평균자책점 3.91의 성적을 남긴 뒤 이듬해 KBO리그 한화 이글스로 복귀한 후 2010년까지 활약했습니다.

야구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유명한 구대성은 호주로 건너가 시드니 블루삭스 투수 코치와 질롱 코리아 감독을 지냈습니다. 2016년에는 15세 이하 호주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의 3·4위전에서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9이닝 1실점 155구 완투승(3-1 승리)으로 대표팀에 동메달을 안겼습니다. 2006년 WBC에서는 5경기에 등판해 8이닝 동안 6피안타 1볼넷 3탈삼진 평균자책점 1.13의 호투로 한국의 4강 신화를 견인했습니다.

파이낸셜투데이 심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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